소장품

강상야박(江上夜泊) - 강에 뜬 배 등불 밝구나

수묵으로 그린 밤 풍경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선비화가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수묵산수화입니다. 그림 길이만 153cm로 꽤 커다란 그림입니다. 작가가 40세 되던 해 정월(음력 1월)에 그렸습니다. 크기나 작품의 수준이 매우 높아서 아무리 봐도 작가가 좋은 작품을 그려 보려고 큰마음 먹고 제작한 것 같습니다. 40세는 중년의 나이로 작가로 막 원숙해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심사정은 1707년(숙종 33) 죽창(竹窓) 심정주(沈廷冑, 1678~1750)의 2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내며 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하였고, 그의 부친인 심정주 역시 포도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나이 18세 때 할아버지가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집안이 몰락하였고, 이로 인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어 본의 아니게 사대부 신분으로 전업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그의 화가로서의 명성은 매우 높아서 여러 분야의 그림을 모두 잘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특히 먹을 쓰는 재주가 뛰어나 비온 뒤 풍경을 실감나게 그린다는 평을 듣습니다.

<강상야박도>, 심사정, 조선 1747년, 153.5×61cm, 종이에 수묵 엷은 색, 본관2033

<강상야박도>, 심사정, 조선 1747년, 153.5×61cm, 종이에 수묵 엷은 색, 본관2033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이 그림은 세로로 긴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은 얼른 보아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맨 아랫부분이 보는 사람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풍경인데 둥근 언덕 위에 잎사귀가 뾰족한 나무들이 서너 그루 서 있습니다. 또한 가장 분명하고 진하게 그렸습니다. 둥근 언덕에서 지그재그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 본 그림의 중간에는 수초가 드문드문 우거진 강물 속에 배가 한 척 떠있습니다. 그림에서 유일하게 채색이 조금 가해진 부분인데 붉은 색으로 배에 켜진 등불을 암시합니다. 가장 먼 풍경은 가려진 듯 희미하게 보이지 않으며 멀리 두 개의 산봉우리가 우뚝 솟아 전체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수묵만으로 그려진 점, 배에 켜진 불빛, 어둠에 싸인 듯 희미한 먼 풍경들로 볼 때, 이 장면이 밤의 물가 풍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먹을 다루는 작가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시인의 봄밤[春夜喜雨]을 그림으로 옮기다

심사정이 이 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 모두 대부분 캄캄한 밤에 불빛이 비춰 일렁이는 수면을 바라본 경험이 있습니다. 여행지나 여름에 놀러간 물가에서 밤을 지낼 때 피서지의 불빛에 반짝이는 검은 물결과 바닷가에 멀리 깜박이는 고깃배의 등불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달이라도 뜬 밤이면 더욱 그렇고요.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단서는 그림의 맨 위쪽 멀리보이는 산봉우리 위에 그가 숨겨놓았습니다.

<강상야박도> 부분

<강상야박도> 부분

들녘 길은 온통 구름이라 어두운데 野徑雲俱黑
강에 뜬 배 등불 밝구나    江船火燭明

이것은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 720~770)의 시 「봄밤에 내린 기쁜 비[春夜喜雨]」의 두 구절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봄밤에 내린 기쁜 비」 즉 「춘야희우」는 761년 두보가 성도(成都)에서 지은 것이라 합니다. 당시 성도에는 겨우내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러한 때에 만물을 흠뻑 적시고 소생시킬 봄비가 밤새 내리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에 지었다고 합니다. 두보가 봄비를 감상하는 시점은 비구름에 달도 뜨지 않은 온통 어두운 밤입니다. 작가인 심사정은 중국의 유명한 시인 두보의 시 두 구절을 재치 있게 빌려와 칠흑같이 어두운 밤 풍경을 그림으로 옮겼고 결과는 보는 대로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흔히 <강상야박도(江上夜泊圖)>라고 부르는데, 밤에 물가에 대어 놓은 배를 그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촉촉해 보이는 먹의 표현은 봄비마저 연상시킵니다.

시정(詩情)을 표현한 그림 – 시의도(詩意圖)

시는 글로 표현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만 문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새기지 않으면 참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림은 그린 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와 그림은 서로를 도와주는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그런 의미에서 시와 그림이 만나 좋은 결과를 만든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그림을 조금 어려운 단어로 표현하면 시의도(詩意圖)라고 하며 산과 물을 그린 전통회화인 산수화의 큰 갈래 중에 들어갑니다. 조선후기 산수화를 살펴보면 역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있는 조선의 산천을 그려 옮긴 진경산수화는 당시 불 일 듯 일어났던 명승지 여행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주만물의 비밀을 품은 참자연을 직접 찾아가 체험한 결과물인 진경산수화는 개인의 체험을 중시하는 당대의 풍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동시대의 다른 화가들은 시의도도 함께 그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유학을 공부한 지식인들이었고 시를 짓고 공부하는 것을 필수교양으로 여겼습니다. 조선시대 궁중화원의 시험인 규장각 자비대령화원 녹취제(奎章閣差備待令畫員祿取才) 문제 중에는 이 그림의 바탕인 두보의 「춘야희우」도 들어있었습니다. 시가 품은 흥취(興趣)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량이 화가가 키워야 할 자질 중의 하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를 이해하고 시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표현하는 시의도도 큰 맥락에서는 산수 자연을 여행하고 느낀 바를 그림으로 표현한 진경산수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또 때로 그림의 작가는 시를 자필로 써서 적절한 여백에 숨겨놓아 그림의 요소로 삼았는데 서예의 솜씨와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습니다. 시의도 한 폭을 보면 작가의 시·서·화에 대한 식견과 그림실력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심사정의 <강상야박도>의 분위기는 기다렸던 봄비를 기쁘게 바라보며 다음날 피어날 꽃을 기대하는 시인 두보의 마음처럼 밝지만은 않습니다. 대신 알 수 없는 깊이와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남아있는 그림마다 작가의 인생이 투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평생 우직하게 그림바보로 살았다던 작가의 모습이 봄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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