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모란무늬 매병 - 생동하는 붉은빛 모란꽃

전성기 고려청자의 특성을 비색(翡色)의 좋은 청자색과 상감(象嵌)의 정교한 장식이라고 한다면, 이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銅彩 牡丹文 梅甁]은 상감청자 위에 동(銅) 안료로 채색을 더하였고 유난히 생동감 있으면서 화려한 표현에 그 가치를 둘 수 있는 수작(秀作)입니다. 또한 유사한 예를 찾기 어려워, 상감청자 매병의 전형(典型)으로 보기 힘든 특별한 매병입니다.

모란무늬 매병, 고려 12-13세기, 높이 34.5㎝, 보물 제346호, 덕수434

모란무늬 매병, 고려 12-13세기, 높이 34.5㎝, 보물 제346호, 덕수434

유려한 곡선을 이루는 매병의 몸체에는 커다란 모란꽃가지를 세 군데 배치하였습니다. 상감기법으로 장식한 모란꽃가지는 꽃잎과 꽃술의 세부까지 정교하게 묘사했을 뿐더러, 동채(銅彩) 기법으로 마치 꽃잎이 붉은빛으로 피어나는 듯이 화려한 느낌을 더했습니다. 무엇보다 꽃가지가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나부끼는 듯 생동하는 모습이 압권입니다. 꽃과 가지, 이파리 모두 한들한들 춤을 추듯 움직입니다.
매병의 어깨를 덮은 것은 네 갈래의 능화형(菱花形) 화판(花瓣)으로, 가느다란 두 줄의 흑상감 선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사이에 백토를 채워 넣었으며 끝부분을 주렴(珠簾)처럼 늘어뜨렸습니다. 화판 안에는 휘돌아 움직이는 듯한 국화 넝쿨을 가느다랗게 흑백상감 장식하였고, 그릇 밑동의 연판(蓮瓣)도 백상감한 뒤 세부를 여러 줄의 짧고 가느다란 넝쿨로 채워 넣었습니다. 전체와 부분, 형태와 무늬를 자유로운 듯 조화롭게 구성하였습니다.

전성기 고려청자의 특성 - 비색과 상감

고려청자가 전성기를 맞은 처음에는 아름다운 청자색과 이에 어울리는 형태의 유려한 선(線)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었습니다. 이 시기 음각·양각 등 기법으로 장식된 무늬는 가까이서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데, 유약의 고임에 따른 청자색의 자연스러운 효과와 형태의 세부 표현을 위해 장식을 더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색’의 청자색은 ‘물총새[翡]의 깃털 색깔’이라 해석되는데, 이는 색깔 값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초록빛과 푸른빛, 투명함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색의 스펙트럼(spectrum)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청자 안에서도 부분 부분에 따라 색이 더 진하고 더 옅으며, 유약이 두껍게 씌워져 불투명한 곳과 얇게 씌워져 청자의 맨살이 드러나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려청자의 비색을 가리켜 동시대 중국에서는 ‘천하제일’이라 일컫기도 했습니다.
전성기 고려청자의 주된 관심과 가치는 시간이 지나면 색깔·형태보다도 상감 장식으로 옮겨갑니다. 상감기법은 반(半) 건조된 그릇 표면에 조각칼로 나타내고자 하는 무늬를 음각하고 초벌구이한 다음 그 안을 붉은 흙[紫土]이나 흰 흙[白土]으로 메우고 유약을 바른 뒤 다시 구워내는 방식입니다. 붉은 흙은 검은색으로, 흰 흙은 흰색으로 나타나 청자 유약 아래에 흑색과 백색이 대조되는 선명한 무늬가 드러납니다. 청자의 태토((胎土)와 상감 흙인 자토·백토는 가마 안에서 구우면 수축되는 비율이 서로 달라 터지기 쉬우므로, 상감청자의 무늬 표현은 무엇보다도 높은 제작 기술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매병 그리고 모란

매병은 고려시대에 ‘준(樽·尊)’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매병은 대체로 작은 입에 둥근 어깨를 하고 있으며 몸체 아랫부분으로 내려갈수록 지름이 좁아지는 형태의 병입니다. 청대(淸代) 허지형(許之衡)의 『음류재설자(飮流齋說瓷)』 중 「설병관(說甁罐)」에 ‘구경이 작아 겨우 매화의 앙상한 가지를 꽂기에 적합한 까닭에 매병이라 부른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태안 마도 바다에 침몰하였다가 발견된 고려시대 무역선에서는 꿀 또는 참기름을 담았던 매병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 매병은 양감(量感)이 특별히 좋은 것은 아니나 초기의 예에 비해서는 몸체의 ‘S'자 곡선이 두드러져, 이미 완숙한 단계의 상감청자 매병 형태를 보여줍니다.
꽃잎은 넓게 백상감하였는데 따뜻한 상아색을 띱니다. 활짝 핀 꽃과 작게 매달린 꽃봉오리의 끝부분은 짙은 붉은빛으로 물든 듯이 표현하였습니다. 꽃술은 가느다란 흑상감 선과 작은 백상감 점으로 세밀하게 나타냈습니다. 꽃가지는 검은 색, 이파리는 흰 색으로 테두리를 하고 잎맥을 검은 선으로 나타냈습니다. 모란은 꽃이 아름답고 풍성하여 위엄과 품위를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부귀화(富貴花)라 부르기도 하고 화중왕(花中王)이라 하기도 합니다. 고려청자에서 모란은 매우 유행하는 무늬였지만, 이렇듯 지극히 화려하면서도 고상하고 생기 있게 묘사된 예는 드뭅니다. 고려 왕실과 귀족 취향의 대담하고 자유로운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끝이 붉은 모란은 일념홍(一捻紅)으로, 왕의 덕과 위용을 상징하는 ‘상서(祥瑞)’의 시제(詩題)로 이용하였고 이것을 청자의 무늬로 사용하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 고려 내에서 청자의 위상이 높았음을 반증하는 것인데, 당시 문학과 정치의 요소가 청자의 무늬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무늬는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표징(表徵)’으로 기능하였기 때문에, 상황에 맞도록 변형하거나 만들면서 독창적인 도상으로 재창조하였습니다.

또 다른 모란무늬 매병

이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銅彩 牡丹文 梅甁]과 비교할 만한 또 다른 모란무늬 매병[靑磁 象嵌 牡丹文 梅甁]이 있어 주목됩니다.

모란무늬 매병, 고려 12-13세기, 높이 35.4cm, 보물 제342호, 본관1981

모란무늬 매병, 고려 12-13세기, 높이 35.4cm, 보물 제342호, 본관1981

이 매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어깨에 늘어뜨린 보자기 형태의 상감 장식입니다. 네모반듯하면서 네 모서리가 기다란 보자기가 마치 매병의 입과 어깨를 덮은 것 같은 모습이며 네 귀퉁이에는 구슬이 달린 수술이 늘어지도록 하였습니다. 상감 보자기무늬의 안쪽이자 매병의 입 주위로는 국화 넝쿨을 가득 흑백상감하였고, 레이스를 연상시키는 연주문(聯珠文)으로 보자기의 가장자리를 둘러 우아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두 군데 수술이 이루는 아치 형태에 맞추어 매병 밑 부분에는 넓은 ‘U’자형으로 구름무늬를 음각하여, 섬세한 장식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몸체 네 군데에 커다랗게 모란꽃가지를 음각 장식하였는데,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과 달리 꽃가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으로, 오히려 고려청자 모란절지문의 전형에 가깝습니다. 정적(靜的)이면서 단정하고 절제된 이미지가 이 모란무늬 매병의 특성이라 할 것입니다.
이 두 매병은 크기와 형태가 비슷하고 둘 다 모란무늬를 모티프로 하여 유사한 구성을 보이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각각의 색깔과 형태, 무늬가 완벽하리만큼 잘 짜여 자체적인 완결성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고도의 제작 기술을 통한 지극한 세밀함과 장식성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생동감 있는 표현 혹은 우아하면서도 긴장된 표현이 자유자재로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고려청자는 고려시대 왕실과 귀족 미술을 대표하며 동시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공예품이었습니다. 구현해내기 어려운 미묘한 아름다움을 가진 청자색과, 절묘한 비율로 자연스러운 곡선을 나타내는 형태, 정교한 무늬까지, 왕실과 귀족의 미감(美感)을 반영하며 특유의 품격을 자랑합니다. 그 중에서도 상감동채 모란무늬 매병은 압도하는 붉은빛 모란꽃의 매력이 파격에 가까운 예입니다. 대담하고 자유로운 묘사까지도 고상하고 품위 있게 표현하면서 동시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 것이 고려청자의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모란무늬 매병 - 생동하는 붉은빛 모란꽃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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