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요령식 동검 - 청동기시대 곡선의 검

국립중앙박물관 고조선실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전시품이 있습니다. 바로 고조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요령식 동검입니다. 청동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했지만 한반도에서 요령식 동검은 그리 많이 발견되지 않고 지배자의 위세품으로는 오히려 간돌검이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동기시대를 이해하는 데 요령식 동검이 지니는 상징성과 의미는 매우 큽니다.

왜 요령식 동검일까?

요령식 동검은 몸체가 중국 악기 비파(琵琶)를 닮아 ‘비파형 동검’이라 부르기도 하고, 고조선의 특징적인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조선식 동검’이라고도 부릅니다. 왜 우리나라의 동검에 요령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요령식 동검은 검몸[檢身] 아랫부분의 폭이 넓고 둥근 비파 모양을 이루며, 중앙보다 약간 위에 뚜렷한 좌우 돌기(突起)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검몸과 자루를 따로 만들어 결합하는 방식입니다. 검몸과 자루를 하나로 만드는 중국식 동검과는 제작 방식이 다릅니다. 이런 형태의 동검은 현재의 중국 랴오닝[遼寧]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기에 ‘요령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요령식 동검에 이어 만들어진 한국식 동검의 명칭도 이런 맥락에서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국식 동검이라 부르는 세형동검은 중국 동북지역이 아니라 한반도를 중심으로 발달한 동검임을 이름에서 알 수 있습니다.

청동 칼자루를 지닌 요령식 동검

고조선실을 둘러보다 보면 요령식 동검이든 한국식 동검이든 대부분 손잡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손잡이를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그럼에도 전시품 가운데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요령식 동검이 있습니다.

요령식 동검, 전(傳) 황해도 신천(칼자루 부분), 청동기시대, 길이 42.0cm, 본관11377·본관10824

요령식 동검, 전(傳) 황해도 신천(칼자루 부분), 청동기시대, 길이 42.0cm, 본관11377·본관10824

이 검몸과 칼자루는 모두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박물관이 구입한 것입니다. 칼자루는 황해도 신천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나 검몸의 출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요령식 동검의 검몸과 칼자루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함께 전시해놓은 것으로, 찌를 때 힘을 가하기 위한 칼자루 끝장식은 복원품입니다. 실제로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T자형 손잡이가 있는 요령식 동검이 발견됩니다.

칼자루에 새긴 기하학적 무늬

황해도 신천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칼자루에는 번개무늬를 세밀하게 새겼습니다. 이러한 번개무늬는 이른 시기의 청동거울에도 많이 사용한 무늬입니다.

요령식 동검 손잡이 세부, 전(傳) 황해도 신천

요령식 동검 손잡이 세부, 전(傳) 황해도 신천

농경문 청동기처럼 청동제품에 사실적인 문양을 새긴 경우는 매우 드문데요. 대부분 선, 점을 이용한 기하학적 무늬가 확인됩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선과 점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선과 점을 이용하여 해, 번개 등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자연의 숭배물을 표현했다고 추정됩니다. 농경사회에서 날씨는 한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였고, 청동기를 사용했던 당시의 지배자는 하늘에 대한 제사를 관장하는 제사장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바위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동심원 무늬 역시 해를 상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령식 동검은 한반도에서 만들어졌을까?

요령식 동검은 중국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지만 한반도에서도 발견됩니다. 최근 연구 성과를 보면 재가공품, 파편까지 포함하여 한반도에서 발견된 요령식 동검의 수는 120여 점에 달합니다. 특히 남한에서는 1974년 발굴한 송국리 돌널무덤의 성과가 당시 매우 획기적이었습니다. 발굴한 정식 유구에서 전형적인 요령식 동검이 간돌검, 돌화살촉, 청동끌, 옥과 함께 처음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 출토품 일괄, 청동기시대

부여 송국리 돌널무덤 출토품 일괄, 청동기시대

한반도에서는 아직까지 청동기를 만들었던 제작소나 채광 유적 등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푸집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청동기를 직접 제작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요령식 동검은 한국식 동검과는 달리 거푸집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견되는 요령식 동검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발견되는 요령식 동검의 형태가 달라 직접 주조했음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손잡이 부분과 결합되는 ‘슴베’ 부분을 보면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만들어진 동검에는 C자 형태의 홈이 있습니다. 아마도 손잡이 부분을 좀 더 단단히 결합할 수 있도록 고안해놓은 장치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요령식 동검 슴베 세부, 부여 송국리

요령식 동검 슴베 세부, 부여 송국리

요령식 동검에서 한국식 동검으로

요령식 동검이 곡선의 형태를 지닌 검이라면 이후 등장하는 한국식 동검은 직선의 날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령식 동검과 비교했을 때 무기로서의 실용성이 더 높아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요령식 동검은 고조선의 대표적인 문화재로 여겨지는데 한국식 동검 문화가 기원전 4세기를 기점으로 중국 동북지역이 아닌 한반도 청천강 이남을 중심으로 발전하기에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에 대한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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