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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후포리 유적 출토 돌도끼

1983년 국립경주박물관이 발굴조사한 울진 후포리 유적은 한반도 동해안 지역의 독특한 선사문화를 엿볼 수 있는 신석기시대 무덤 유적입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예술품과도 같은 돌도끼가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울진 후포리 유적 출토 돌도끼, 신석기시대, 길이 54.2cm(왼쪽) 등, 경주3873 등

울진 후포리 유적 출토 돌도끼, 신석기시대, 길이 54.2cm(왼쪽) 등, 경주3873 등

후포리 유적은 후포면 후포리 등대산 정상부에 있습니다. 산꼭대기의 자연적인 구덩이에 뼈를 추려서 묻은 세골장(洗骨葬) 무덤 유적입니다. 직경 4m 정도의 구덩이 안에서 40명 이상의 인골을 발견하였고 그 주위에서는 인골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돌도끼를 확인했습니다. 길이 20~30cm 정도의 돌도끼가 가장 많은데, 길이가 50cm 이상 되는 긴 돌도끼도 있습니다.

어느 시대 무덤일까?

신석기시대 무덤은 이전 시기인 구석기시대 무덤보다는 자주 발견되지만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신석기시대 무덤은 주로 조개더미에서 확인되며, 얕은 구덩이를 파서 시신을 묻은 뒤 흙이나 돌, 조개껍데기, 토기 조각 등으로 덮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후포리 유적은 특이하게 산 정상부에 위치합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일정한 지역에 묻은 독특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후포리 유적 조사 모습

후포리 유적 조사 모습

꾸미개

꾸미개

신석기시대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입니다. 신석기인들은 토기를 생활용품으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무덤의 껴묻거리로도 활용했습니다. 청동이나 철과 같은 금속으로 도구와 꾸미개 등을 만들어 사용하게 된 다음에도 죽은 사람과 함께 토기를 묻는 풍습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후포리 유적에서는 대표적인 껴묻거리인 토기가 단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고, 돌로 만든 꾸미개와 대롱옥 등 몇몇 석기와 함께 길이가 긴 형태의 돌도끼가 무려 180여 점이나 확인되었습니다. 많은 양의 돌도끼가 확인된 흔치 않은 출토 양상도 놀랍지만, 전체 표면을 잘 갈아서 매끈하게 만든 돌도끼가 많다는 점 또한 특이합니다.
이처럼 돌을 갈아 도구를 만드는 기술은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마연(磨硏) 기술 자체는 신석기인들도 이미 알고 활용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 더하여, 시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토기를 유적에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후포리 유적의 돌도끼가 신석기시대의 것인지 아니면 청동기시대의 것인지 단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 돌도끼는 땅을 파고 나무를 베거나 석기를 만드는 등 각종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공구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후포리 유적 돌도끼는 길이와 폭의 비율을 보면 일반적인 돌도끼에 비해 긴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표면 전체를 공들여 갈아 매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길이 20cm 내외의 돌도끼에는 사용을 했던 흔적이 꽤 남아 있지만 30cm 이상의 돌도끼에는 사용 흔적이 거의 없는 것도 특징적입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적어도 긴 모양을 한 대형 돌도끼는 실생활용이 아니라 의례용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길이가 긴 대형 돌도끼는 비록 그 수가 적기는 하나 춘천 교동, 회령 연대봉 조개무지 등 동해안 지역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후포리 유적 또한 신석기시대 유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적의 입지와 출토품의 특이한 양상으로 볼 때,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 장소와 구분되는 공간을 매장지로 선택하고 남다른 껴묻거리를 묻는 독특한 장례 의식을 치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돌도끼와 인골 출토 광경

돌도끼와 인골 출토 광경

어떤 사람들의 무덤일까?

신석기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뼈를 추려 집단 매장한 예는 매우 드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발견된 40명 이상의 인골은 안타깝게도 출토 상태가 좋지 않아 자세한 형질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가운데 그나마 가장 잘 남아 있는 몇몇 치아를 분석한 결과, 여기에 묻힌 사람들이 20대 전후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20대라고 하면 젊은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후포리 유적에 묻힌 사람들이 과연 젊은 사람들이었을까요? 그들이 살던 시대는 지금처럼 영양상태가 좋지도 않았을 것이고 주변 환경 또한 안락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기에 당시 사람들의 혹독했던 삶이 수명에도 영향을 주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뿐입니다.
후포리 선사유적은 신석기시대 무덤이 드문 우리나라에서 부족하나마 형질인류학적 연구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던 유적입니다. 토기 없이 석기만 발견되고 길이가 긴 돌도끼가 출토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독특한 양상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또한 후포리 유적에 묻힌 사람들이 정확히 언제, 어느 지역에 살았었는지 등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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