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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제 화형 묘지명 – 개성에서 죽은 경주 호장 딸의 묘지명

석제 화형 묘지명, 고려시대, 지름 21.5cm, 높이 2.70cm, 개성 출토, 덕수2580

석제 화형 묘지명, 고려시대, 지름 21.5cm, 높이 2.7cm, 개성 출토, 덕수2580
여덟 잎 꽃 모양의 묘지명으로, 그 주인공은 경주 향리의 딸입니다.

옆면옆면

바닥면바닥면

경주 향리의 딸, 개성에 묻히다
樂浪金氏女 父戶長智源

개성에서 출토된 묘지명으로, 주인공은 경주(慶州) 향리의 딸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고려시대 묘지명 가운데 향리 계층의 것으로는 유일합니다. 죽은 이의 본관과 성별, 부친의 신원만 밝혀 놓은 점에서 일반적인 묘지명과는 많이 다릅니다. 단순한 묘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이 역시 넓은 의미에서 묘지명의 범주에 든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묘지명에 보이는 글 중에서 죽은 이 아버지의 직함으로 새겨진 ‘호장(戶長)’은 최고위직 향리의 것입니다. 또 죽은 이를 “樂浪金氏女”, 즉 “낙랑 김씨의 딸”이라 했는데, 낙랑은 고려시대 경주의 별호(別號)였고, 실제로 김씨는 경주에서 호장을 배출하는 성씨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여자이면서도 남편 대신 아버지의 직함과 이름을 새긴 점은 그녀가 사망 당시 미혼이었음을 말해 줍니다. 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생사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묘지명에 남편의 신원을 밝혔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길을 더욱 끄는 점은 이 묘지명이 개성에서 출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개성에서 천리나 떨어져 있는 경주의 향리 딸이라면, 그것도 혼인을 하지 않은 어린 여성이라면, 당연히 아버지의 고향이자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경주 땅에 묻히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도 묘지명이 개성에서 출토된 것은 어떠한 연유로 인해 그녀가 개성에 와 있다가 사망하였음을 의미합니다. 과연 경주 향리의 어린 딸은 무슨 일로 개성에 갔을까요?

고려시대의 호장과 김지원

어린 여자 아이가 혼자 먼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가족이나 지인, 친척 등 그녀와 동행했을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도 역시 아버지를 따라 갔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녀의 아버지 김지원은 경주의 호장이었고, 호장들은 당시의 서울인 개경, 즉 지금의 개성으로 출장 갈 일이 적지 않았거든요.
고려시대 향리 조직의 최고위직인 호장은 대개 후삼국 시기 호족의 후예로서, 고려 집권 국가의 중앙 정부로부터 임명장까지 받는, 관료 계급에 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군인에 선발되었다가 후에 무반 관료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또 호장의 손자 이상은 과거에 응시하여 문반 관료가 될 수 있었고, 그 중에는 고위 관료로 승진하여 장차 문벌로 성장할 기반을 닦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호장은 정부가 공인한 도장을 갖고 다니며 공물·조세의 수취와 노동력 징발 등 여러 가지 고을 업무와 관련된 문서 행위를 하고, 유사시에는 지방군을 지휘하였습니다. 또 고을 수호신(성황신, 산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거나, 불탑을 세우고 범종이나 반자와 같은 다양한 불구(佛具)를 만드는 불사(佛事)를 주도하는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고려시대 호장이 무엇보다 이채로운 점은 다른 데에 있습니다. 정월 초하루나 왕실의 책봉·장례와 같은 국가적 경조사 때면 마치 제후가 천자를 알현하듯 상경하여 임금을 뵈었기 때문입니다. 이 묘지명 주인의 아버지인 김지원도 경주 지역 호장의 신분으로서 정월 초하루는 물론이고 기타 국가적 경조사 때에 개성으로 출장을 갔을 것입니다. 경주 호장의 미혼의 딸이 천리나 떨어진 개성에 갔던 것은 출장에 나선 그 아버지의 상경에 동행한 경우를 상정하는 것이 제일 자연스럽습니다.

아비의 슬픔과 사랑을 담은 묘지명

아버지는 서울 구경을 시켜달라며 출장길에 따라 나선 예쁜 딸의 죽음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 사정으로 딸의 시신[혹은 화장 유골]을 고향까지 옮겨가지 못한 채 개성 땅에 묻은 아비는 가누기 힘든 슬픔과 애틋한 사랑을 담아 개성의 솜씨 있는 장인에게 꽃 모양의 묘지명을 만들어 달라고 했겠지요.
부탁을 받은 장인은 여덟 잎 꽃의 모양으로 오석을 다듬고 그 한가운데에 네모난 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묘지명 주문자인 김지원의 글씨대로 「樂浪金氏女 父戶長智源」(경주 김씨의 딸로, 아비는 호장 김지원이다)이라고 새겼을 것입니다.
곽 바깥으로 꽃잎 가까운 곳에는 세 군데에 걸쳐 작은 크기의 꽃과 잎의 무늬를 아로새겼습니다. 이 무늬들과 곽 안의 글자에는 주사(朱砂)를 칠하여 붉은 빛이 아름답게 감돌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그 붉은 빛은 거의 사라지고 희미하게 흔적만 남은 상태입니다.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바닥면에도 꽃잎 모양의 윤곽을 따라 선을 새겨 넣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먼 타향에 묻고 아비는 고향 경주를 향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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