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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복식으로 보는 우리 옷 이야기 단령(團領)

수백 년 전 조상들의 무덤을 이장할 때 관 속에서 미라 상태의 시신과 함께 발굴되는 옷가지를 일컬어 출토복식이라 합니다. 관 안에는 수의에 해당하는 습의(襲衣),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에 사용된 옷, 보공용 옷들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무덤 주인이 생전에 입었던 옷뿐만 아니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의 옷도 함께 관에 넣는 것이 풍습이었습니다. 따라서 출토복식은 그때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으며 역사적 자료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이러한 출토복식이 여러 벌 있습니다.

단령은 ‘둥근 깃’의 의미와 함께 남자들이 혼례 예복으로 입기도 하고 관복으로 착용하는 겉옷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조선시대 무덤에서 나온 출토복식 중에는 여성들이 단령을 착용한 사례가 꾸준히 발견되고 있어 단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단령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며 남성의 것과 비교할 때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남성들의 단령은 옆이 트여있고 옷의 좌우 옆선에는 직사각형의 무가 달려있습니다. 반면 여성들의 단령은 옆선의 무를 부채형식으로 2~3번 접은 뒤 여러 겹의 맞주름을 잡았는데 이는 남성의 단령에는 보이지 않는 형식입니다.

단령의 둥근 옷깃 단령의 둥근 옷깃

여성 단령의 옆선 무 여성 단령의 옆선 무

관복으로 입은 단령

구름과 보배무늬 단령(雲紋緞團領), 조선 19세기 후반, 길이 138cm, 화장 108cm, 신수15323

구름과 보배무늬 단령(雲紋緞團領), 조선 19세기 후반, 길이 138cm, 화장 108cm, 신수15323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을 바르게 하고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함이다’
- 이덕무 『사소절(士小節)』
‘자식은 부모를 섬기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예기(禮器)』

조선시대의 남성들이 의관(衣冠)을 갖추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외모는 사람의 정신을 반영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의를 갖추기 위해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겉옷[袍]을 입었습니다. 이 가운데 단령은 제복(祭服), 조복(朝服), 상복(常服) 등의 관복으로 착용했던 조선시대 남성들의 대표적인 겉옷입니다.

관복으로서의 단령은 고려 말 우왕 12년(1386)에 정몽주가 명나라에서 관복을 청한 뒤 명의 영향을 받은 사모(紗帽)와 단령, 품대(品帶), 흑화(黑靴)를 입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또 관리들의 계급에 따라 색상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정1품~정3품까지는 홍색, 종3품~6품까지는 청색, 7품~9품은 녹색을 입었습니다. 이후 정조대의 『대전통편(大典通編)』에서는 당하3품 이하의 홍색옷은 폐지되고 청색과 녹색으로 단일화되었습니다. 특히 평상시 집무용으로 단령을 입을 때는 품계에 따라 무늬를 달리한 흉배를 가슴과 등에 달았습니다. 위의 단령은 조선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옷으로 구름무늬의 형태로 보아 1800년대 중반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반적으로 남성 관복으로 입은 단령은 구름무늬의 단(緞)직물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구름무늬는 시기별로 그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구름의 형태로 옷의 제작 시기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구름이 무리지어 나타나는 이 형태는 1400년대에 나타납니다. 구름무늬는 구름머리와 꼬리로 구성됩니다. 구름이 연결되는 방식과 배열 방법은 크게 사선형, 일자형, ㄷ형으로 나뉩니다. 1800년대의 구름무늬는 구름머리가 작아지고 꼬리가 길어지며 간격이 넓어져 사선형태로 배치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성들도 입었다?!

명대 부인의 단령, 청, 세로 150.1cm, 가로 81.1cm, 구4992

명대 부인의 단령, 청, 세로 150.1cm, 가로 81.1cm, 구4992

그렇다면 여성들도 단령을 입었을까요?

여성들이 실제로 단령을 입었는지에 대한 문헌기록이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단령과 유사한 ‘둥근 깃’ 형태의 옷깃을 뜻하는 원삼(圓衫), 원령(圓領), 단삼(團衫)의 명칭이 보입니다. 양성지(梁誠之,1415~1482)의 『눌재집(訥齋集)』에서는 양반, 부녀에 이르기까지 원삼을 지어입고 그 위에 흉배를 붙이고 다닌다고 언급을 하며 비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연산군11년(1505)에는 ‘사라능단(紗羅綾緞)의 값이 올라서 가난한 자는 여자의 옷으로 단령을 만드니 조하 조참 때면 반 넘어가 다 여자의 원삼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남성과 여성 모두 단령과 유사한 옷을 입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조선 태종(太宗, 재위1400~1418)·문종(文宗, 재위1400~1418)·예종(睿宗, 재위1468~1469)대에는 명나라의 법식에 따라 관복을 받았습니다. 이 기록에 단삼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명나라의 단삼은 『대명회전(大明會典)』과 『명사(明史)』에 기록된 홍무(洪武, 1368~1398)와 영락(永樂, 1403~1424)년간의 대표적인 여성 예복입니다. 명대의 초상화에서도 확인되는 옷으로, 조선에서 받은 단삼도 이와 유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따라서 조선시대 여성들이 단령을 입은 모습을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단령은 그림은 거의 없지만 실제 옷들이 남아 있습니다.

호랑이 흉배가 직금된 여성 단령, 용인(龍仁) 영덕동(靈德洞) 출토, 조선 16세기 초, 세로 134.0cm, 가로 156.0cm, 국립대구박물관, 대구25818

호랑이 흉배가 직금된 여성 단령, 용인(龍仁) 영덕동(靈德洞) 출토, 조선 16세기 초, 세로 134.0cm, 가로 156.0cm, 국립대구박물관, 대구25818

현재까지 조선시대의 무덤에서 발견된 여성의 단령은 약 7점으로, 국립대구박물관에 16세기 전반으로 추측되는 단령이 1점 있습니다. 용인 영덕동에서 출토된 단령은 가슴과 등 쪽에 호랑이 흉배를 금실로 짜 넣은 홑 단령입니다. 흉배의 크기는 가로·세로 31cm이며 금판을 얇게 만들어 잘라 명주실과 함께 꼬아서 만든 연금사로 만들었습니다. 호랑이 흉배는 무관(武官) 1품을 뜻하는 신분 표식입니다. 따라서 여성의 남편이 1품 무관에 해당하는 고위관직의 벼슬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성의 단령은 남성의 것에 비해 소량 출토되었습니다. 그러나 흉배가 달린 단령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여성 예복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입니다.

지금도 조선시대의 무덤은 꾸준히 발견되고 있지만 주인이 확실하지 않은 무덤이 대다수입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남아 있는 옷에서 그들이 살았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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