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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치는 뼈-복골(卜骨)

사람들은 일찍부터 계절과 기후를 예측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고 새로운 상황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점복(占卜)은 미래를 미리 예측하기 위해 점을 치는 것으로, 그 대표적인 도구가 점치는 뼈인 복골(卜骨)입니다. 복골에는 짐승의 뼈를 이용하여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예측하던 사람의 행위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복골, 해남 군곡리패총 외, 1987년 발굴, 초기철기, 길이 16.1cm(왼쪽), 광주2654 외

복골, 해남 군곡리패총 외, 1987년 발굴, 초기철기, 길이 16.1cm(왼쪽), 광주2654 외

복골의 기원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통치자가 국정을 운영하면서 인사(人事)의 길흉, 농잠(農蠶)의 풍작을 점쳤습니다. 잘 알려진 것이 갑골(甲骨)을 이용하여 점복을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갑골점복은 상(商)나라 때 절정을 이뤘다고 전해지며, 이후 서주(西周) 중기가 지나면 종적을 감춥니다. 그러나 중국 동북지역의 여러 유적에서는 뼈를 이용한 점복 방식인 복골이 지속적으로 발견됩니다. 동북지역에서는 상나라 때 전래된 여러 점복 문화 중에서 복골을 이용한 점복 방식이 크게 발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청동기시대부터 중국 동북지역의 영향을 받아 짐승뼈를 이용하여 점을 쳤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짐승뼈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풍습은 서력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력 전후한 시기 서남해안에 인접한 취락에서 많은 복골이 발견됩니다. 특히 해안가에 만들어진 조개더미 유적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많은데,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해남 군곡리유적, 나주 장동리유적, 김해 부원동유적, 사천 늑도유적이 있습니다.

복골의 제작

우리나라의 복골은 주로 멧돼지나 사슴의 어깨뼈를 이용합니다. 다른 부위의 뼈를 사용할 경우 일부를 갈거나 깎아서 어깨뼈와 같은 모양을 만들기도 합니다. 대체로 뼈에 가로와 세로로 줄을 맞추어 둥근 홈을 파서 불을 지진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을 지진 홈을 따라 금이 간 모양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복골 세부 모습 복골 세부 모습

복골 세부 모습 복골 세부 모습

복골을 만드는 작업은 먼저 해체한 동물뼈를 적당히 자른 뒤 깎고, 긁고, 갈아 다듬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불로 지질 때 불길이 잘 먹혀 들어가 갈라진 선들을 명확하게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듬기 작업이 끝난 재료를 그대로 바로 지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에 앞서 구멍을 팝니다. 구멍 옆을 예리한 도구로 쪼아내 불길의 방향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점치는 뼈를 달구어진 도구로 지져 뼈가 갈라지는 방향을 살피는 것입니다.
점치는 뼈는 중국 동북지방에서부터 한반도 서남해안, 일본 규슈지역까지 발견되고 있어 점을 치는 풍습이 한반도 남부지역을 거쳐 일본 규슈지역까지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치는 뼈를 만드는 동물의 종류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출토 사례가 많은 중국 동북지역에서는 사슴, 양, 멧돼지, 소 등의 뼈를 주로 이용하다가 점점 거북이 껍질을 사용하는 반면, 한반도 서남해안과 일본 규슈지역에서는 큰 변화 없이 멧돼지와 사슴뼈만을 사용하였습니다.

삼한 사람들과 복골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동이전(東夷傳)⌟ <부여조(夫餘條)>에 “전쟁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발굽을 관찰하여 길흉(吉凶)을 점친다. 발굽이 갈라지면 흉하고 합하면 길하다[有軍事亦祭天 殺牛觀祭 以占吉凶 蹄解者爲凶 合者爲吉].”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의 발굽을 관찰하여 점치는 방식으로, 동물의 견갑골을 이용하는 복골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그러나 전쟁이나 나라의 큰일을 할 때 점을 침으로써 공동체의 유지와 결속력을 다지는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한의 여러 지역에서 보이는 복골에 대한 기록은 『삼국지』 ⌜위서·동이전⌟ <왜인조(倭人條)>에 다음과 같이 전해집니다.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는 뼈와 무를 불에 태워 길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 먼저 무가 자란 곳에 점치려는 내용을 고하는데, 그 말이 거북점을 칠 때와 같았고, 불에 타 갈라진 모양으로 점을 쳤다[其俗舉事行來 有所雲為 輒灼骨而蔔 以占吉凶 先告所蔔 其辭如令龜法 視火坼占兆].” 이 기록으로 불을 지진 홈을 따라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뼈로 점을 치는 것은 군사를 일으키거나 원거리 항해를 할 때, 또한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알고자 할 때와 같이 길흉화복을 예언하기 위한 의식에 행해졌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전쟁, 교역 등 새로운 시작이나 행위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점치는 뼈는 사람들의 안정을 꾀하던 당시 지배층의 노력의 산물이었던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점치는 뼈-복골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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