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천지반(天地盤), 천문으로 점을 치다 : 안경숙

고대인들은 천재지변 등의 현상이 발생하면, 그것을 미래에 발생할 어떠한 일의 징조로 보아 앞으로의 일을 예측했습니다. 이처럼 점복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습니다. 한 대(漢代)의 천문(天文) 사상은 이후 전개되는 중국 사상의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천문을 통해 점을 치던 방식은 태을구긍(太乙九宮), 기문둔갑(奇門遁甲), 육임(六壬)의 세 종류가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점을 칠 때 사용한 도구가 천지반입니다. 천지반은 보통 둥근 천반(天盤)과 네모난 지반(地盤)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축을 중심으로 두 개의 반이 연결되고 위에 있는 천반이 회전하는 구조입니다. 천반과 지반에는 북두칠성을 포함해서 10천간(天干)·12지지(地支)·28수(宿)·8궤(卦)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빠른 육임식 천지반은 낙랑 무덤인 평양 석암리 205호와 201호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205호 출토품은 천반과 지반이 다 남아 있어 거의 완전히 복원할 수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발굴한 후 일본 도쿄대학에 보관하였기 때문에 실물을 접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달리 201호에서 출토된 천반은 반 정도만 남아 있지만, 복원 지름이 9.4cm인 칠기로 천반의 전형적인 구도를 보여주는 실물입니다.

점을 치던 천반, 평양 석암리 201호 무덤 출토, 1세기, 칠기, 5.0x6.5cm, 1925년 발굴, 고적23189

점을 치던 천반, 평양 석암리 201호 무덤 출토, 1세기, 칠기, 5.0×6.5cm, 1925년 발굴, 고적23189

천문으로 점을 보다

汝陰侯墓 출토 육임식 천지반 실측도(왼쪽)와 모식도(오른쪽)

汝陰侯墓 출토 육임식 천지반 실측도(왼쪽)와 모식도(오른쪽)

고대 중국에는 예측술수(豫測術數)가 많았는데, 그 중 태을신수(太乙神數), 기문둔갑(奇門遁甲), 육임학(六壬學)의 세 가지 술수[三術]를 삼식(三式)이라고 해서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히, 태을은 별자리의 이름으로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태일(太一)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도교에서는 천제가 머문다고 믿는 북극성[太一星]을 말하는데, 병란(兵亂)과 재화(災禍) 및 생사(生死)를 관장한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전국책(戰國策)』 등에는 “오자서(伍子胥)가 육임에 능통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른 시기부터 점을 보던 방식으로 육임을 채택하여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천문(天文)에는 태을(太乙), 지리(地理)에는 기문둔갑(奇門遁甲)이며, 인사(人事)에는 육임(六壬)이라고 해서 상으로는 천문에 통하고, 하로는 지리에 달하며, 중으로는 인사를 살핀다”고 하여 예로부터 대단히 중히 여겼음이 확인됩니다. 천문(天文)과 점의 연관성은 한(漢)나라 문제(文帝) 7년(기원전 173)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을구궁점반(太乙九宮占盤), 육임식반(六壬式盤), 28수반(28宿盤) 세 개의 천문 점반이 안휘성(安徽省) 부양현(阜陽縣) 여음후 하후조묘(汝陰侯 夏侯竈墓, 기원전 165년 사망)에서 1977년에 출토되고, 78년에 정식 보고가 이루어지면서 그것의 용도가 당시 천문 관측에 이용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로 뒷받침되었습니다.

둥근 천반에서는 중앙의 북두칠성을 기준으로 12월장(月將), 28수 등을 뾰족한 도구로 새기거나 붓글씨로 썼으며, 네모난 지반에도 10천간(天干)·12지지(地支)·28수(宿)·8궤(卦)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예는 여음후묘(汝陰侯墓) 출토 천지반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됩니다.

汝陰侯墓 출토 태을 구궁 천지반 모식도(왼쪽)와 실측도(오른쪽)

汝陰侯墓 출토 태을 구궁 천지반 모식도(왼쪽)와 실측도(오른쪽)

낙랑에서 출토된 천지반

낙랑에서 출토된 천지반은 삼식(三式) 중에서도 육임(六壬)에 해당됩니다. 육임학은 점복술의 하나로 춘추전국시대 이래 발전하였고, 우리 역사에서는 낙랑에서 출토된 두 점과 경주 첨성대 부근 출토 통일신라시대 천반 한 점이 육임식 천지반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문헌상으로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시험과목으로 언급되고, 수입 도서 목록에도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 확인됩니다. 이렇게 실물과 문헌 속에서 육임식 천지반이 꾸준히 확인되는 것은 그만큼 육임식 점이 정확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가운데 석암리 205호 무덤 출토품은 천반의 지름이 9cm, 지반은 한 변이 13.7cm라고 합니다. 하지만 발굴 이후 일본으로 가져가 도쿄대학[東京大學] 고고학연구실(考古學硏究室)에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을 뿐 실물을 접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2009년도에 교토문화박물관[京都文化博物館] 전시에서 복원품이 공개된 바 있습니다. 이에 반해 석암리 201호 무덤 출토품은 천반이 절반 정도만 남아 있으며 복원한 지름이 9.4cm인 목태 칠기로 존재만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조사 중 실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석암리 205호 무덤에서 출토된 천지반

1925년 도쿄대학 문학부가 발굴한 평양시 낙랑구역 석암리 205호 무덤은 동혈합장의 귀틀무덤으로 가운데에 있는 널에서 목제 도장이 출토되어 ‘왕우묘’라고도 부릅니다. 주로 으뜸덧널에서 철검, 천지반을 비롯하여 칠이배, 칠반 등의 각종 칠기류와 함께 토기, 동경 등의 껴묻거리가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광한군(廣漢郡)’과 ‘촉군(蜀郡)’ 공관에서 제작된 연도가 적힌 칠기들이 다수 출토되었는데, 여기에는 건무 21년(45), 건무 28년(52), 영평 12년(69)의 기년과 함께 제작지와 제작자가 상세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영평 12년이 새겨진 칠반에는 곤륜산의 서왕모와 용호가 그려져 있어 주목 된 바 있습니다. 이 무덤은 기년명 칠기와 거울 등 출토품으로 볼 때 1세기대로 편년됩니다.

특이한 점은 그 당시 보고자가 언급한 것처럼, 보통의 낙랑 귀틀무덤에 철기가 다수 부장되는 것과는 달리 여기서는 철검 1점을 제외하고는 철제나 청동제의 무기가 거의 없고 당시 대표적인 신분 상징물이던 거마구도 부장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변의 다른 유적 출토품들과 비교 분석하여 피장자의 신분 및 출토 유물의 성격에 대한 자세하게 고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천지반은 무덤 북쪽 방에서 작고 얇은 판 2매로 출토되었는데, 당시에는 파손된 상태였지만 제작 초기의 형태는 동그랗고 네모난 것입니다. 두 점 다 표면을 노란 분으로 칠하고 붉은 물감으로 윤곽을 그렸으며, 원반상에는 중앙에 북두칠성을 붉게 그리고, 열두 달 신(神)의 이름[月將]과 십간(十干), 십이지를 썼습니다. 또한 네모난 지반에도 팔괘, 십간, 십이지와 이십팔수를 배열하고 있습니다. 명문을 묵서로 남겼지만 마멸이 심해서 보고서 발간 당시에는 전체를 판독하기 어려웠습니다.

다음으로, 네모난 지반에는 대각선 방향과 변의 중간에 팔괘를 방위에 맞게 새기고 각 변 중앙에도 괘를 새겼습니다. 원반의 중심에 구멍을 뚫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천반을 지반 위에 겹쳐서 회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 천반과 지반이 소위 천원지방의 상을 보이고 있고, 북두칠성, 팔괘, 십간, 십이지, 이십팔수와 같은 천문 방위에 관한 것이 열을 지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점치는 도구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석암리 205호 무덤 출토 천지반

석암리 205호 무덤 출토 천지반

석암리 201호 무덤 출토 천반

석암리 205호 무덤에서 천지반이 출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암리 201호에서도 천지반 조각이 출토되었습니다.

201호 출토품의 경우 약보고 형식으로 간략하게만 언급되어 있어 자세한 출토 상황을 살피기 어려웠습니다. 천반은 덧널 안팎의 칠조각들 사이에서 출토되었으며, 원반부의 반 정도만 남아 있었지만 기존의 출토 사례들이 있어 쉽게 용도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천지반은 워낙에 작은 규모에다가 그 마저도 조각으로 출토되어, 그동안 그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다행히 최근의 조사 작업을 통해 천지반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었던 점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석암리 201호 출토 천반 실측도

석암리 201호 출토 천반 실측도

구조를 살펴보면 천반은 지름이 9.4cm인 목태 칠기로 중앙에 회전축을 삽입하는 구멍이 있고, 역시나 중앙부가 많이 마멸되어 있어서 중심축을 이용해 회전하는 구조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앙의 축을 중심으로 4개의 권역으로 구분됩니다. 중앙부에는 북두칠성을 뾰족한 도구를 사용해 새겨 놓았습니다. 다음 원권대에는 12지 월장을, 그 다음 원권대에는 12지 등을 섞어서 적었습니다. 205호 출토품은 노란색으로 칠을 하고 묵서로 적었으나 201호 출토품에는 뾰족한 도구로 새겨 넣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로 보아, 석암리 201호 무덤 출토품의 경우, 현재까지 보이지 않지만 네모난 지반의 존재 가능성 및 출토 맥락 등에 대한 자세한 고찰이 추가로 필요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205호 출토품과 비교하여 피장자의 신분 및 사회적 역할이 어떻게 달랐으며, 북두칠성의 방향이 달라진 것은 점치는 결과와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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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천지반(天地盤), 천문으로 점을 치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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