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태평성시도 : 이수미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태평성시도>는 성(城)으로 둘러 싸인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대형 병풍입니다. 수레와 인파가 가득하고 번창한 상점과 화려한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사람들은 행렬을 짓거나 무리를 이루어 상업, 수공업, 건설, 농경 등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도시에 대한 바람과 태평성대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조선 후기 사회가 지향하던 이상사회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특이한 조선시대 회화

<태평성시도>는 각 폭의 장면이 연결되어 한 화면을 이루고 있는 8폭 병풍입니다. 제작 시기와 화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없고 등장인물과 건축물에 중국적인 요소가 강하게 보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회화사 속에서 이 작품을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지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태평성시도(太平城市圖)>, 비단에 색, 8폭, 각 113.6 × 49.1 cm

결론적으로 <태평성시도>는 중국의 작품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중국적인 요소와 조선적인 것이 혼재해 있는 양상을 보이지만 중국의 생활양식과 문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조선적인 특징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회화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근법, 건축 표현법, 인물의 묘사법 등이 조선 후기 회화 양식과 공통점을 보이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작 시기는 조선 후기 정도로 비정할 수 있습니다.

<태평성시도>, 패루, (부분)

이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 구성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인물과 건물이 그려져 있어서 어디서부터 보아야 할지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우선 화면은 크게 건축물과 도로를 따라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준이 되는 중요한 건축물은 도로 중간에 세워져 있는 패루(牌樓)입니다. 패루는 역사적 사건을 기리거나 중요 건축물로 통하는 도로의 기점을 알리는 중국식 건축물입니다. 모두 6개의 패루가 그려져 있으며(제1, 2, 3, 4, 6폭), 제7폭의 패루는 한창 건설 중입니다.

패루와 성문은 크고 작은 도로와 연결되는데, 도로가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어지면서 공간을 나누고 있습니다. 한편 제4폭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하천은 번화가와 주변 지역을 구분합니다. 그래서 패루, 성문, 도로, 하천을 기준으로 화면은 ① 화면 중심부의 번화가, ② 오른쪽의 언덕 주변, ③ 다리 건너 성문 주변, ④ 원경의 주택가로 구획할 수 있습니다.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번화가는 이 작품의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제3, 4폭에 앞뒤로 놓인 대형 패루를 기준으로 이 공간은 좌우로 양분되며 주로 상업 활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구역인 언덕 주변에는 선비들의 모임과 여인들이 연주를 하며 그네를 타는 모습이 그려져 앞에서 설명한 번화가와 달리 한가한 여가 생활을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 다리 건너 성문 주변의 구역에는 성을 지키는 군인들과 무예훈련 장면이 그려져 있고 아래 부분에는 일반 가정의 일상생활과 농사 장면이 묘사되었습니다. 네 번째 원경의 주택가에는 일반 가옥뿐만 아니라 곳곳에 탑이 서 있어서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인과 수레가 가득한 거리

<태평성시도>에는 약 2,1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집 안에서 생활하거나 행렬이나 무리를 지어 구경하기도 하고 상업을 비롯한 수공업, 건설, 농경, 군사 등 각종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 듯 사람들의 모습이 실감나게 묘사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특히 상업 공간, 즉 다양한 상점과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과 손님들의 모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림 곳곳에 제법 규모가 있는 건물들이 등장하는데 대개 마당의 중심 공간을 둘러싸고 한 조 또는 여러 조의 건축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도로변을 따라 1층 혹은 2층 건물이 나열되었는데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점포를 열어 물품을 진열하였습니다. 한 건물에 여러 종류의 점포가 입주하였으며, 도로에 면한 앞은 가게이고 뒤의 건물에는 살림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상업과 주거의 기능이 섞인 복합적인 공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태평성시도>, 건물, (부분)

<태평성시도>, 상점, (부분)

상품의 종류를 크게 대별하면 제5폭에 세로로 가로지른 도로를 경계로 오른쪽에서는 의생활 관련 물건 및 기호품 등을 팔고 있으며 왼쪽에는 주로 식생활의 재료와 물품들의 상점이 많이 있습니다. 상품의 품목을 살펴보면, 일상 생활 용품보다는 특이하고 고가의 기호품들을 판매하는 화려한 상점들이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왕하는 손님들이 많고 진열된 상품이 풍성하여 떠들썩하고 붐비는 시장의 분위기를 매우 생생하고 활기 있게 전합니다.

어떻게 이런 장면이 그려졌을까요? <태평성시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에 중국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청명상하도>는 중국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의 번화한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명, 청대에 많은 모사본이 제작되고 그런 모사본들이 조선 후기에 다량으로 들어와 당대의 학자들과 화가들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태평성시도>와 <청명상하도> 후대본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소재를 다룬 장면이 많이 발견되어 이러한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청명상하도>를 조선의 상황에 맞게 변화시켜 수용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기한 구경거리

<태평성시도>, 서양추천, (부분)

사람들이 둥그렇게 운집한 장면들이 <태평성시도>에 가끔 보입니다. 이렇게 모여서 사람들은 동물묘기, 싸움, 공연 등 특이한 구경거리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5폭의 위쪽에 붉은 색 기둥을 2개 세우고 4명의 남자가 빙빙 돌며 곡예하는 장면이 시선을 끄는데, 다음에 소개하는 중국 사행의 기록인 연행록(燕行錄)의 ‘서양추천(西洋鞦韆)’의 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서양추천(西洋鞦韆)은, 마당 좌우에 붉게 칠한 긴 기둥 넷을 세우고, 칸마다 나무로 가늘게 “일(日)”자 모양을 만들고, 기둥 위아래에 일자 나무를 만들고, 기둥 가운데에 “삼(三)”자로 짧은 서까래를 가로 꽂아서, 그 가운데의 서까래가 물레처럼 돈다. 머리 위에 붉은 상투를 틀고 몸에는 채색한 옷을 입었으되, 붉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여 그 색이 같지 않은 아이 열 여섯이 한꺼번에 기둥에 올라 각각 일자 나무를 밟고 서서, 위에 있는 자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 있는 자는 아래에서 위로 빙글빙글 돌아, 붉고 푸른 색이 어지러이 날아서 구름 사이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게 마치 귀신이 부리는 듯하다.
- 金正中,『燕行錄』(1792)

이처럼 연행록에 묘사된 ‘서양추천’ 장면은 <태평성시도>의 것보다 곡예하는 사람도 많고 기구도 복잡하나, 인물들의 복장과 자세가 유사합니다. 정식으로 설치된 서양추천 기구와 비교하면 <태평성시도>에서는 그 규모가 축소되고 세부가 생략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추천 곡예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여 곡예의 속도감이나 신기함이 잘 표현되었습니다. 청대는 명대와 달리 중국에서 외국사행들의 북경 활동을 구속하지 않았기에 조선의 연행사들은 황제의 행렬 행사에 참석하는 등 북경에서 벌어지는 각종 행사를 목도하고 조선과 다른 풍습과 광경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

조선시대 회화사를 볼 때 <태평성시도>처럼 다양한 상업활동에 주목한 회화작품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ㆍ정조대 이래 서울은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와 문화, 교육 등 모든 면에서 집중된 기능을 가진 대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조선후기 유통경제의 발달과 함께 서울에는 전국의 물자와 중국, 일본과 서양의 외래 문물이 집중되었으며, 이에 서울은 유통경제와 소비, 문화와 유흥의 중심지로서 활기찬 면모를 보이게 됩니다. 이런 상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태평성시도>에는 은연 중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연행을 통하여 접한 중국의 첨단 문물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견문도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태평성시도>가 구현하고 있는 성시의 기본적인 특징은 정조가 추진하였던 화성(華城)의 신도시 건설안과 부합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화성 신도시 건설의 구체적인 사실이 일치하기 보다는 상업 중심의 도시를 이루려는 이상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태평성시도>의 화가는 조선후기의 시대상황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을 직면하면서 상업화에 대한 희구와 첨단문물에 대한 동경, 새로운 도시에 대한 바람, 의식주 걱정 없는 축제분위기의 태평성대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서 현실적 이상향을 화면에 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태평성시도>는 다양한 맥락의 장면들이 모자이크를 이루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인 이상공간을 시각화하였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태평성시도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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