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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사정전훈의 : 이재정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생각은 동서고금에 걸쳐 존재해 왔겠지만, 유교적 가치관에서 그것은 특히 강렬하였습니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내세웠던 조선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역사가 매우 중시되었습니다. 조선의 통치자와 지식인들은 올바른 통치를 위해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자 하였고, 이 때 지침서가 되었던 대표적인 책이 『자치통감(資治通鑑)』이었습니다.

자치통감, 통치를 위한 거울

『자치통감』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 영종 황제의 명을 받아 만든 중국 역사책입니다. 사마광은 이 책에서 기원전 403년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 때부터 송나라 건국 직전인 960년 오대(五代) 시대까지의 역사를 시대별로 서술하였습니다. 무려 1362년 동안의 역사를 서술하다 보니 294권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에다 책을 완성하는 데도 19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벌어진 일들을 연대별로 기록한 이 책은 인간의 갖가지 행동과 생각을 포괄하고 있어 통치자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신종 황제가 하사한 책 이름 『자치통감』의 의미가 바로 다스리는 일[治]에 자료가 되고[資] 역대를 통하는[通] 거울[鑑:귀감]이라는 뜻입니다. 이후 이 책은 ‘통치를 위한 교과서’, ‘제왕의 책’으로 불리면서 중국과 우리나라의 통치자들에게 널리 읽혀왔고 많은 주석서들도 등장하였습니다.

세종이 잠을 줄여 가며 교정을 보아 완성한 책

『자치통감』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쓸 때 『자치통감』을 참고하였다고 하니 고려시대에 이 책이 이미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이 책이 통치를 위한 책으로 특히 주목을 받은 것은 조선에 와서입니다. 태조 이성계는 즉위 교서에서 인재를 뽑을 때 『사서(四書)』 『오경(五經)』과 함께 『통감(通鑑)』에 통달한 사람을 뽑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태종 역시 『통감』을 읽고 신하들과 의견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치통감』은 분량이 엄청나게 많고,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책을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이에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조선 사람들이 이 책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판 『자치통감』을 편찬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였습니다.

1434년(세종 16) 6월에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다음 해 6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당시 대다수 학자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를 위해 세종은 경연(經筵)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종은 이 책의 진행 과정을 꼼꼼히 점검하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참가자였던 대제학 윤회(尹淮, 1380~1436)에게 그날그날 편찬하는 대로 매일 저녁 가져오게 하여 밤늦게까지 직접 원고를 교정보았습니다. 세종은 윤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즈음 이 글을 봄으로 인해 독서가 유익함을 알았다. 총명이 날마다 더하고 수면이 아주 줄었다.”

사진. 세종의 주도로 편찬한 『자치통감사정전훈의』 권 236(보물 1281호)의 첫 번째 면

세종의 주도로 편찬한 『자치통감사정전훈의』 권 236(보물 1281호)의 첫 번째 면

이렇게 해서 편찬된 책이 『자치통감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입니다. 사정전은 근정전 뒤에 있는 편전으로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수시로 경연을 열던 곳이었습니다. 훈의란 ‘뜻을 설명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국의 인명, 지명, 고사에 대한 풀이를 단 책이라는 뜻입니다. 책 이름에서 조선 사람들이 중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상식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이 책이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당시 중국에서 나와 있던 『자치통감』에 관한 여러 주석들을 최대한 참고하였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안지(安止, 1377~1464)는 이 책이 당시까지 존재했던 주석서의 수준을 뛰어넘으면서도 읽기 편하고 핵심적인 주석을 담은 주석서를 편찬하려는 의도로 편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자신이 지은 책 『필원잡기(筆苑雜記)』에서 이 책에 대한 자부심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훈의만큼 상세하고 정밀한 책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훈의가 가장 우수하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 책은 조선시대 국왕의 경연과 왕세자 서연(書筵)의 교재로 거듭해서 읽혀졌습니다.

기증자의 아름다운 마음까지 깃든 책

1435년 6월에 완성된 이 책은 1436년 2월에 간행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과 중앙 정부가 책의 간행을 주도하였습니다. 책의 보급은 주로 중앙에서 인쇄를 마친 책을 각 지방에 내려 보내거나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세종은 이 책의 편찬을 시작한 1434년에 종이 30만권을 준비하여 5~6백질을 간행하여 보급할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294권이나 되는 책을 5백질 만들려면 그 비용과 인력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목판으로 이 정도의 책을 만들려면 목판을 수천 장 새겨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국 세종의 처음 생각과 달리 분량이 많은 이 책은 금속활자로 간행되었습니다. 완성된 책은 100책 294권이었습니다.

세종의 주도로 편찬된 『자치통감사정전훈의』는 역시 세종이 만든 걸작품인 갑인자(甲寅字)로 인쇄되었습니다. 출판에 관심이 많았던 세종은 인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활자 개발에 주력하였고 그 결과 만들어진 활자가 갑인자입니다. 명나라 판본의 글씨체를 바탕으로 만든 이 활자는 그 전에 만든 계미자(癸未字)와 경자자(庚子字)에 비해 인쇄 효율이 향상되었을 뿐 아니라 글씨체 또한 아름답습니다.

갑인자는 위부인자(衛夫人字)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부인은 중국의 명필 왕희지(王羲之, 307~365)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사람입니다. 갑인자가 위부인의 글씨체를 닮아 이런 별명이 붙은 것으로, 그 만큼 글씨체가 아름답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갑인자는 조선시대에 여섯 번에 걸쳐 같은 글자체로 활자가 만들어질 만큼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사진. 1772년에 갑인자의 글자체로 다섯 번째 만든 활자인 임진자(壬辰字) 대자(大字) 1772년에 갑인자의 글자체로 다섯 번째 만든 활자인
임진자(壬辰字) 대자(大字)

사진. 1772년에 갑인자의 글자체로 다섯 번째 만든 활자인 임진자(壬辰字) 소자(小字) 1772년에 갑인자의 글자체로 다섯 번째 만든 활자인
임진자(壬辰字) 소자(小字)

그러나 아쉽게도 세종 때 간행한 『자치통감사정전훈의』는 완질로 전해지지 않고, 겨우 몇 책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원래 발행 부수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 1281호 『자치통감사정전훈의』는 세종 때 간행된 얼마 남지 않은 책 가운데 하나이며, 같은 판본 가운데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책입니다. 이 책은 『자치통감』 권 236~238로 당(唐) 덕종(德宗) 정원(貞元) 17년(서기 801)부터 헌종(憲宗) 원화(元和) 7년(서기 812) 8월까지의 역사 기록입니다.

사진. 세종의 주도로 편찬한 『자치통감사정전훈의』 권 238(보물 1281호)의 마지막 면 세종의 주도로 편찬한 『자치통감사정전훈의』 권 238(보물 1281호)의
마지막 면

사진. 『자치통감사정전훈의』에는 사정전에서 이 책의 주석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자치통감사정전훈의』에는 사정전에서 이 책의 주석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 나와 있습니다.

이 책의 인쇄 형태를 보면 테두리는 네 모서리 모두 한 줄로 되어 있는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1면은 10행 19자로 되어 있습니다. 책지(冊紙)의 접혀진 한가운데에 물고기꼬리를 반으로 접은 모양인 하향흑어미(下向黑魚尾)가 아래 위에 있다. 이는 조선시대 전기에 인쇄한 책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첫 번째 면에 ‘자치통감’이라는 책 제목과 권수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 두 줄에 걸쳐 편찬자 사마광의 관직과 이름 등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나무 판에 전체 글자를 새겨 활판(活版)에 끼운 것입니다. 계속 쓰이는 긴 직함 때문에 이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관청이나 회사에서 관직이나 부서명 등을 새긴 고무도장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네 번째 줄에 ‘사정전훈의’라고 명시되어 있어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편찬한 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자치통감사정전훈의』에는 세종의 책에 대한 애정과 역사에 대한 존중, 훌륭한 통치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이 책은 지난 해 돌아가신 송성문(宋成文) 선생(1931~2011)이 2003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책입니다. 귀중한 문화재를 아낌없이 기증한 분의 아름다운 마음까지 깃들여 있어 이 책은 오늘날에 더욱 빛을 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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