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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 숙종의 일생과 의궤 : 이수미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장남으로 7세에 왕세자가 되었고 14세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숙종의 등극은 정식 왕비가 낳은 첫째 아들이 왕위를 계승한 안정적인 예이자 할아버지 효종, 아버지 현종 이후 적자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왕위 계승이었기에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숙종은 왕비를 세 번에 걸쳐 맞아 들였으나 불행하게도 모두 후사가 없었습니다. 첫째 정비는 인경왕후 김씨(1661~1680)로 20세의 나이에 승하하고, 두 번째 왕비는 인현왕후 민씨(1667~1701)로 35세로 타계하고, 세 번째로 맞이한 인원왕후 김씨(1687~1757)는 숙종의 승하 후 왕대비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빈 장씨가 낳은 왕자(후의 경종)과 숙빈 최씨가 낳은 왕자(후의 영조)의 존재는 정국을 복잡하게 만드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진. 『숙종인경왕후가례도감의궤(肅宗仁敬王后嘉禮都監儀軌)』. 1671년(현종 12) 4월, 숙종이 왕세자 때 세자빈(1661~1680, 인경왕후)을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왕세자에 책봉된 숙종은 그의 나이 11세 때 가례를 올려 세자빈을 맞이하였습니다. 『경국대전』에서는 남자 15세 이상, 여자 14세 이상이라야 혼인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왕실의 경우는 대개 10세가 넘으면 가례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숙종인경왕후가례도감의궤(肅宗仁敬王后嘉禮都監儀軌)』, 1671년(현종 12), 1책, 50.1 × 38.3 cm
1671년(현종 12) 4월, 숙종이 왕세자 때 세자빈(1661~1680, 인경왕후)을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왕세자에 책봉된 숙종은 그의 나이 11세 때 가례를 올려 세자빈을 맞이하였습니다. 『경국대전』에서는 남자 15세 이상, 여자 14세 이상이라야 혼인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나, 왕실의 경우는 대개 10세가 넘으면 가례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사진. 『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肅宗仁顯王后嘉禮都監儀軌』. 1681년(숙종 7) 5월, 숙종이 인현왕후(1667~1701)를 계비로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가 1680년(숙종 6년) 10월 26일에 타계한 후 다음해인 1681년 2월 22일에 국장을 끝낸 후 바로 계비 간택에 들어가 삼간택에서 서인의 핵심 세력인 여흥 민씨 유중의 딸 인현왕후가 간택되었습니다. 국왕의 혼례식을 기록한 의궤인 만큼 이전의 왕세자 가례의 의궤보다 구성 항목이 늘어났고 내용도 보다 짜임새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숙종인현왕후가례도감의궤(肅宗仁顯王后嘉禮都監儀軌』, 1681년(숙종 7), 1책, 48.9 × 36.2 cm
1681년(숙종 7) 5월, 숙종이 인현왕후(1667~1701)를 계비로 맞이한 혼례식 과정을 기록한 의궤입니다. 숙종의 정비인 인경왕후가 1680년(숙종 6년) 10월 26일에 타계한 후 다음해인 1681년 2월 22일에 국장을 끝낸 후 바로 계비 간택에 들어가 삼간택에서 서인의 핵심 세력인 여흥 민씨 유중의 딸 인현왕후가 간택되었습니다. 국왕의 혼례식을 기록한 의궤인 만큼 이전의 왕세자 가례의 의궤보다 구성 항목이 늘어났고 내용도 보다 짜임새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강력한 정치력, 당당한 예술

숙종 시대는 붕당정치가 절정에 이른 때로서 붕당 간의 대립이 극성하여 정쟁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왕위 계승 및 학문적 견해에 대한 첨예한 이견으로 인하여 속종 전반기에는 서인과 남인이 대립하고 후반기에는 노론과 소론이 대립하는 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에 숙종은 집권당을 일거에 바꾸는 이른바 ‘환국(換局)’으로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왕의 권위와 힘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붕당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으나 정책 대결의 긴장감 속에 사상적, 문화적 역량이 축적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45년 10개월간의 치세 동안, 임진왜란 등 이전의 전란과 재해를 복구하는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어 다음 시기로의 도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안정된 기반을 마련한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재위 기간 동안 약 65건의 의궤를 제작하였으며 의궤의 체재는 아직 완전히 정비되지 않았지만 당당한 글씨와 자연스러운 그림과 채색에 고전적인 품격이 넘칩니다. 정종(定宗), 단종, 소현세자빈 강씨의 명예를 회복시킨 과정을 기록한 의궤를 편찬하는 등 성리학적 의리를 기준으로 역사를 재평가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사업을 펼쳤습니다.

숙종은 1720년에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으며 조선 조정에서는 ‘숙종’의 묘호(廟號)를 올렸습니다. 능은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마련되었으며, 능호는 명릉(明陵)입니다.

사진.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1720년(경종 즉위) 조선 제19대 왕 숙종(肅宗)의 국장(國葬)에 관한 의궤입니다. 숙종은 재위 46년(1720) 6월 8일에 60세를 일기로 경덕궁(慶德宮)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습니다. 『숙종국장도감의궤(肅宗國葬都監儀軌)』, 1720년(경종 즉위), 2책, 47.7 × 35.1 cm
1720년(경종 즉위) 조선 제19대 왕 숙종(肅宗)의 국장(國葬)에 관한 의궤입니다. 숙종은 재위 46년(1720) 6월 8일에 60세를 일기로 경덕궁(慶德宮) 융복전(隆福殿)에서 승하했습니다.

사진.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肅宗明陵山陵都監儀軌)』. 1720년(경종 즉위) 6월,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을 조성하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입니다. 명릉은 1701년(숙종 27)에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능소(陵所)를 마련하면서 미리 조성되었고 숙종이 승하한 후 이곳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책의 첫머리에 간략하게 그린 능의 모형과 재궁(梓宮, 관)을 담아두는 찬궁(欑宮)의 네 벽에 그려진 채색 사수도(四獸圖)가 실려 있습니다.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肅宗明陵山陵都監儀軌)』, 1720년(경종 즉위), 2책, 51.8 × 40.0 cm
1720년(경종 즉위) 6월,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을 조성하는 의식 절차를 기록한 의궤입니다. 명릉은 1701년(숙종 27)에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능소(陵所)를 마련하면서 미리 조성되었고 숙종이 승하한 후 이곳에 나란히 묻혔습니다. 책의 첫머리에 간략하게 그린 능의 모형과 재궁(梓宮, 관)을 담아두는 찬궁(欑宮)의 네 벽에 그려진 채색 사수도(四獸圖)가 실려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외규장각 의궤: 숙종명릉산릉도감의궤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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