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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구름용무늬 항아리 : 이정인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분청사기와 백자로 대표됩니다. 유교사회의 이념과 질서를 구현한 매체로서 오백여 년 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백자와 달리, 분청사기는 고려 말 상감 청자의 전통을 밑거름으로 16세기 후반 무렵까지 조선의 도자 문화를 풍성하게 일구었습니다.

여의주를 전력하여 쫓는 용 묘사, 15세기 전반에 나온 분청사기의 정수

사진. 분청사기 구름용무늬 항아리. 상감 장식의 역동적인 용을 중심으로, 작은 국화 무늬를 인화 기법으로 정성껏 꾸미고 엷은 청색의 맑은 유약을 입혀, 분청사기 고유의 조형성이 돋보입니다.

분청사기 구름용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높이 48.5 cm, 국보 259호
상감 장식의 역동적인 용을 중심으로, 작은 국화 무늬를 인화 기법으로 정성껏 꾸미고 엷은 청색의 맑은 유약을 입혀, 분청사기 고유의 조형성이 돋보입니다.

분청사기는 회청색의 도자기 표면에 백토를 입혀 장식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畫), 귀얄, 분장(粉粧)으로 나뉘는데, 그 중 상감과 인화 기법은 분청사기 장식의 골자를 이룹니다. 본래 상감은 바탕이 되는 재질에 다른 재료를 박아 넣어 장식하는 방법으로, 고려시대 은입사 공예나 나전칠기에서 시도되었고 상감청자에서 만개했던 독창적인 공예 기법입니다. 상감 청자에서 보듯이 무늬를 음각으로 새기거나 파내고 여기에 붉은 색의 자토나 백토를 메운 뒤 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흑색과 백색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게 됩니다. 나아가 일일이 새겨서 표현하는 방식에서 진일보하여 도장을 찍어 보다 효율적인 공정으로 처리한 것이 인화 기법입니다. 이와 같은 상감과 인화 장식은 고려 후기 청자의 주류를 이루었고,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주요한 장식 기법으로 거듭나면서 조선의 미감으로 정착하였습니다. 특히 분청사기 구름 용 무늬 항아리(국보 259호, 높이 48.5㎝)는 상감과 인화 기법이 조화를 이루는 15세기 전반 분청사기의 정수입니다. 회청색 바탕흙의 몸체에다 상감 장식의 역동적인 용을 중심으로, 작은 국화 무늬를 인화 기법으로 정성껏 꾸미고 엷은 청색의 맑은 유약을 입혀, 분청사기 고유의 조형성이 돋보입니다.

고려시대부터 제작되던 형태를 몸체로 한 이 항아리는 백색의 넝쿨 무늬[당초문(唐草文)]와 흑색의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3단의 무늬 띠를 경계로 하여 그 사이에 4단의 무늬가 장식되었는데, 가장 중심인 무늬는 흑백색의 상감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용입니다. 좌향(左向)으로 여의주를 전력하여 쫓는 용을 묘사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세련미가 떨어지지만 비늘이나 갈기와 같은 부분 처리는 세밀한 선으로 성의 있게 상감하였고, 구름 속을 뚫고 나아가는 힘찬 기세만은 놓치지 않고 잘 살렸습니다.

그 중 한 마리가 아래쪽 넝쿨 무늬 띠를 발로 살짝 밟은 듯이 처리한 모습은 용을 다소 낮게 배치한 구도를 재치 있게 승화시켜 시각적 묘미를 더합니다. 특히 용은 왕권의 상징으로 용 무늬 항아리[용준(龍樽)]은 궁중의 여러 의례 시에 사용되었는데, 이 용 무늬 항아리도 왕실과 관련된 용도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진. 용무늬 세부 모습. 흑백색의 상감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용. 용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좌향(左向)으로 여의주를 전력하여 쫓는 용을 묘사하였습니다.

용무늬 세부 모습. 흑백색의 상감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용.
용은 왕권을 상징합니다. 좌향(左向)으로 여의주를 전력하여 쫓는 용을 묘사하였습니다.
밑바닥이 뚫려 있는 항아리, 제작의도는 밝혀지지 않아

일부 수리가 된 항아리의 입 안쪽에서 목 바깥쪽으로 촘촘하게 찍은 작은 국화 무늬는 조선시대 인화 기법의 면모라 할 만합니다. 빈틈없이 도장을 찍어 도자기 바탕의 색깔이 아닌 무늬와 더불어 하얗게 면을 처리한 방식은 조선시대 인화 기법의 전형적인 특징인 것입니다. 이는 어깨 부분을 감싸듯이 펼쳐진 여의두 무늬[여의두문(如意頭文)] 주변에도 화사하게 장식되어 눈꽃 같은 인화 장식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드러냈습니다.

흑색의 윤곽선 안에 백색의 선을 살려 두 겹으로 표현한 여의두 무늬는 안쪽으로 반원형의 도안화된 파도 속에 작은 연꽃과 수금(水禽)으로 추정되는 부정형(不定形)의 면이 상감으로 처리, 여의두 무늬 주변의 인화 장식과 어우러지면서 용이 배치된 공간과 대비를 이룹니다.

사진. 여의두 무늬와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국화 무늬. 세밀한 기법이 돋보입니다.

여의두 무늬와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국화 무늬. 세밀한 기법이 돋보입니다.

끝으로 맨 아래쪽에는 역시 흑백의 조화를 이루는 연꽃잎 무늬[연판문(蓮瓣文)]가 돌아가며 장식되고 그 안에는 연꽃잎을 돋보이게 장식하는 화려한 무늬가 상감되어, 항아리의 위쪽 공간을 보다 안정감 있게 떠받치고 있습니다.

한편 이 항아리가 갖고 있는 한 가지 내밀한 특징은 밑바닥이 없이 뚫려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용도나 제작 기법 등에 대한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지만 명확한 근거는 불충분합니다. 다만 이 항아리를 빚어낸 완성도를 고려하면 미완성이 아닌 의도적인 처리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과 조선 분청사기의 변용

그러면 이러한 장식 구성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긴밀한 구성의 배경에는 일찍이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이 반영되었습니다. 원대부터 본격화된 청화백자의 유행은 이후 중국의 도자 문화를 새롭게 열었고, 명대에도 지속되면서 더욱 다채롭게 전개되었습니다.

이러한 도자 문화의 조류에 따라 여러 경로를 통해 전래된 중국 청화백자는 조선 백자보다 앞선 백자 문화의 단면으로서 조선 도자의 발전에도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용 무늬가 중심이 되면서 위아래 여의두 무늬와 연꽃잎 무늬로 이루어진 구성은 특히 원대 청화백자 항아리나 매병에서 확인되고 용의 자세는 명대 청화백자의 표현과 흡사하여, 당시 조선의 주류적 도자였던 분청사기에 중국의 청화백자 양식이 접목, 조선 분청사기만의 경지로 변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의 새로운 문화를 담다

15세기 전반이 조선이라는 역사의 전환기이자 국가의 기틀이 확립되던 시기였던 만큼 도자 문화도 시대의 흐름 아래에서 변화하고 정착하였습니다. 고려 청자의 전통이 분청사기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독자적인 도자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이 분청사기의 제작에도 반영되어 조선 도자의 모습으로서 재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 전통과 문화적 교류 속에서 새롭게 일군 조선의 도자 문화는 유교적 사회상과 맞물리면서 점차 백자 위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분청사기 구름 용 무늬 항아리는 전통의 계승과 타 문화의 소통이 융화된 시대의 산물로, 조선이라는 신세계 속에서 일어선 조선 도자의 발돋움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인의 가슴 속에 활달한 개성과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간직된 분청사기이지만, 분청사기 구름 용 무늬 항아리는 조선 문화가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순간의 시대성을 발현하고, 조선 왕실의 권위를 표명한 도자기의 하나로서 다시금 기억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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