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 권소현

회화와 도자의 만남 - 옛 그림을 담은 도자기

넓은 화창 속에 펼쳐진 산수를 담고 있는 이 청화백자 산수무늬 항아리[靑畫白磁山水文壺]는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입니다. 이 시기에 청화백자가 본격적으로 다량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청화백자는 여전히 귀한 것으로 취급되어 대부분이 관요(官窯)인 분원(分院) 가마에서 만들어졌으며 도자기에 그려진 그림 또한 궁중의 도화서에 속한 전문 화가들인 화원이 직접 내려가서 그림으로써 당시의 회화 화풍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앞면, 동정추월)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앞면, 동정추월), 조선 18세기, 높이 38.1 ㎝

관요(官窯) 분원(分院)의 의미는 왕의 식사와 궁궐내의 연회에 관한 일을 맡은 관청인 사옹원의 분원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며 경기도 광주 일대에 10년을 단위로 옮겨 가며 운영되었고 1752년부터는 경기도 광주 분원리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도화서는 조선시대에 어진을 제작하거나 지도와 각종 궁중 행사를 그리는 일을 맡아 보았던 관청을 말합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대부 문인들이 즐겨 완상하던 묵죽과 묵매, 묵란, 묵국의 사군자와 묵포도 등이 시문되었습니다.

성종 17년(1486)에 찬술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경기도 광주목 토산조에는 “자기(磁器)는 매년 사옹원의 관리가 화원을 거느리고 와서 어용지기(御用之器-왕이 쓰는 그릇)를 감조(監造)했다”라고 적고 있어 화원이 분원에서 생산되는 백자의 그림을 그렸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 후기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작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마치 백자의 하얀 면에 한 폭의 그림을 옮겨 놓은 듯이 옛 그림을 도자기 위에 담고 있습니다. 항아리의 전후 양면에 커다란 능화형을 두고 그 안에 소상팔경(瀟湘八景) 중의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과 산시청람(山市晴嵐)의 정경을 그렸으며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끼워 넣었습니다. 동정추월도는 능화형 안에 악양루(岳陽樓-중국 호남성 동정호 주변에 위치한 누각으로, 소상팔경 중 동정추월에 등장하는 모티브)로 보이는 누각을 화면 오른쪽 아래에 배치하였고 원경에는 물결에 휩싸인 봉우리와 달을 뚜렷이 그려 넣어 동정추월도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진.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 상세(좌)와 옥전(玉田)필 산수도(우), 저본담채.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앞면 상세(좌)와 옥전(玉田)필 산수도(우), 저본담채.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회화의 화목(畫目)으로 자주 등장하는 소상팔경도는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의 소강(溯江)과 상강(湘江)이 합쳐지는 곳의 빼어난 여덟 풍경을 그린 그림입니다. 원래는 중국 당대 이후의 시에 주로 나타나다가 송대 이후로 회화에 등장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수용되어 조선 전기부터 말기까지 회화의 주제로 꾸준히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조선에서는 많은 화가들이 점차 이상적인 경치를 상징하는 관념화된 소상팔경도를 그렸습니다. 조선시대 18세기 이후에는 그림의 화목을 넘어 청화백자의 문양에도 자주 등장하게 되고 19세기가 되면 청화백자 병이나 연적 등에 일정하게 도식화되어 그려지기도 합니다. 호가 옥전(玉田)인 사람에 의해 그려진 18세기경의 것으로 보이는 회화 작품은 우뚝 선 바위 위의 누각, 호수 위에 떠 있는 배 등의 모티브에서 동정추월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시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는 백색의 도자기 위에 그려진 동정추월도와 좋은 비교가 됩니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청화백자에는 소상팔경문을 필두로 한 누각산수문 계열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이는 당시 진경산수화와 남종 문인화가 유행하는 등 회화에서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난 시대적 상황과도 일치합니다.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도자기 위 그림의 공간감과 입체감

사진.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뒷면의 산시청람 부분. 원경의 산과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뒷면의 산시청람 부분. 원경의 산과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어울림이 아름답습니다.

산시청람은 푸르스름하고 흐릿한 기운이 감도는 산간마을을 그린 것으로 능화형 안의 왼쪽에 바위가 있고 그 위에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 배치되었으며 원경의 산 위로는 달이 걸려 있습니다. 산시청람의 주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소재인 이야기하는 두 사람을 길게 뻗어 나온 근경의 바위 위에 배치하여 산시청람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평면의 회화에서는 느끼지 못하던 무한한 공간감과 입체감을 둥근 항아리의 기형을 잘 응용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사진.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대나무 부분(좌)와 매화나무 부분(우)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대나무 부분(좌)와 매화나무 부분(우)

이 소상팔경문 외에도 동정추월과 산시청람으로 채운 화창과 화창 사이에는 매화와 대나무 그림을 끼워 넣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주 화제(畫題)였던 사군자도 도자기에 많이 그려져서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는 도자기 문양의 단골 소재였습니다.

회화의 소재가 도자기에 담겨진 예는 이 외에도 많아서 신사임당의 병풍으로 익히 알고 있는 초충(草蟲)의 소재를 다룬 초충도(草蟲圖), 새해에 벽사의 용도로 그려졌던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한 호작도(虎鵲圖), 장생불사한다는 열 가지 사물을 그린 십장생도(十長生圖)가 그려진 도자기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선 백자에 담긴 문양을 통해 옛 그림도 함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산수문이 담긴 이 항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달빛이 고요히 비친 호수에 있는 듯한 가을 밤의 정취가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이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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