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홍련(紅蓮) - 선비들이 사랑한 꽃 : 전인지

심사정, <홍련(紅蓮)> 《화원별집(花苑別集)》 제54면, 조선 1765년, 종이에 채색, 29.5×20.7cm, 덕수2097-54

심사정, <홍련(紅蓮)> 《화원별집(花苑別集)》 제54면,
조선 1765년, 종이에 채색, 29.5×20.7cm, 덕수2097-54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홍련(紅蓮)>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화원별집(花苑別集)》의 한 면입니다. 이 화첩은 조선시대 화가들의 작품을 대체로 시대 순으로 실었고 산수화, 사군자 등 각종 옛 그림의 분야가 고루 포함되어 있습니다. 심사정은 여러 가지 그림에 능했던 조선시대 선비 화가인데 꽃과 새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이 화첩에는 심사정의 그림이 두 점 실려 있는데 모두 꽃과 새를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꽃 가운데 군자로 불리는 연꽃과 예쁜 물총새를 단아하게 담고 있습니다.

물총새와 연꽃

연꽃이 붉게 핀 연못에 물총새가 날아듭니다. 물총새는 파랑새목 물총새 과의 조류로 몸길이는 약 17cm입니다. 아주 작고 깜찍한 새지요. 물총새의 몸의 빛깔은 윗면이 광택이 나는 청록색이고 아랫면은 주홍색을 띕니다. 청록색깔을 하고 있어서 중국에서는 비취색깔 새, 취조(翠鳥)라고 부릅니다. 물총새는 물가의 사냥꾼입니다. 물고기 매[魚鷹]라고도 불리는데 먹이를 잡을 때면 수면에서 1~1.5m의 높이에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가 수면에 물고기가 떠오르면 물속으로 뛰어들어 긴 부리로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습니다. 예쁘고 마냥 한가로울 것 같은 물총새지만 늘 마음은 지나가는 물고기에게 있습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한 곳에 가만히 앉아서 인내심 있게 물고기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물총새는 시와 그림의 좋은 소재였습니다. 그림 속 물총새는 청록색 머리와 적색 몸통이 인상적입니다. 물총새에서 시선을 옮기면 화면의 대부분은 분홍빛 연꽃과 탐스러운 연잎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화가가 그림 하단에 수초와 자잘한 연잎을 그려 넣지 않았다면 연못인 것을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연꽃은 연못 속에서 훤칠하게 자라나 탐스러운 꽃을 피웠습니다. 연못에 연꽃을 가득 심는 전통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국유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 그림에서도 연꽃이 가득 핀 연못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향기는 멀리 맑게 퍼진다. 꽃은 물속에 꼿꼿이 서 있어 바라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꽃이라서 사랑한다.’ 라는 송대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이후로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로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그림 속 연꽃은 가느다란 꽃대에도 불구하고 꼿꼿이 서서 곱지만 곧은 자태를 뽐냅니다. 마치 「애련설」 속의 연꽃 같습니다.

몰락한 양반의 후예 – 가난과 고독 속에 일군 예술

심정주, <묵포도도(墨葡萄圖)>《화원별집(花苑別集)》 제49면, 조선, 종이에 수묵, 28.3×19.2cm, 덕수2097-49

심정주, <묵포도도(墨葡萄圖)>《화원별집(花苑別集)》 제49면,
조선, 종이에 수묵, 28.3×19.2cm, 덕수2097-49

심사정은 1707년(숙종 33년) 죽창(竹窓) 심정주(沈廷冑, 1678~1750) 의 2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내며 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하였고, 그의 부친인 심정주 역시 포도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홍련>이 수록된 《화원별집(花苑別集)》에는 부친 심정주의 포도그림도 실려 있어서 그림에 재주가 있는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가 태어나기도 전인 1699년에 할아버지인 심익창(沈益昌, 1652~1725)이 과거시험 부정행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형을 받았으며 1724년에는 연잉군(훗날 영조) 시해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결국 사사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심사정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당시 선비들은 명분을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기에 과거시험 부정행위는 그대로 사회적인 매장을 뜻했으며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몰락한 가문의 후손으로서 가난과 고독 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심사정의 7촌 손자인 심익운(沈翼雲, 1734~?)이 지은 <현재거사묘지명(玄齋居士墓誌銘)>에 의하면 ‘일평생 50년간을 근심과 걱정에 시달리며 낙이라고는 없는 쓸쓸한 날을 보냈으나 하루도 붓을 쥐지 않는 날은 없었다’ 라고 하며 ‘몸이 불편할 때도 작업을 멈추지 않고 궁핍하고 천대받는 쓰라림, 모욕 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의 그림은 가난과 고독 속에서 피어난 꽃과 같았습니다.

작가의 원숙한 기량이 발휘된 수작 : 꽃과 새, 동물그림 분야의 대가

심사정, <호취박토(豪鷲搏兎)>, 조선, 1768년, 종이에 채색, 115.1×53.6cm, 덕수5718

심사정, <호취박토(豪鷲搏兎)>, 조선, 1768년, 종이에 채색,
115.1×53.6cm, 덕수5718

<홍련(紅蓮)> 그림의 오른쪽 물총새 밑에는 을유(乙酉) 동(冬) 현재(玄齋)라는 작가의 기록이 있습니다. 을유는 1765년으로서 작가 나이 59세 때 겨울에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리고 4년 후에 작가가 사망하므로 만년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 기량이 원숙했을 때에 그린 것이지요.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중심이 되는 연꽃과 연잎을 화면 가득 채워서 강조한 것이 눈에 뜁니다. 누가 보아도 주인공은 연꽃입니다. 그리고 연꽃위에 갈대가 한 그루 솟아올라 화면에 균형을 잡아주고 사방으로 뻗은 잎은 보는 사람의 시야를 넓혀 줍니다. 물총새는 오른쪽 위에서 대각선으로 물을 바라보며 화살처럼 내리꽂히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총새의 목표인 물고기가 떠오른 수면으로 시선을 옮기게 됩니다. 그림을 살펴보면 이러한 보는 사람을 위한 시각적 배려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심사정은 꽃과 새 그림 뿐 아니라 동물 그림에 뛰어났는데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매 한 마리가 토끼를 잡아채는 긴박감 넘치는 장면을 포착한 <호취박토(豪鷲搏兎)>도 만년의 수작 중의 하나입니다. 왼쪽 가운데 부분에 ‘무자하방사임량(戊子夏倣寫林良)’이라 씌어져 있어 심사정(沈師正)이 1768년 63세 때 여름 명(明)나라 화가 임량의 작품을 참작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화면에는 사나운 매와 이제 막 절명의 위기를 맞은 토끼 뿐만 아니라 언덕 아래 암수 꿩 한 쌍과 까치 두 마리가 등장합니다. 매와 토끼라는 주제를 부각시켜 대담하게 중앙에 배치하였습니다. 놀라 나무 위와 아래에서 울며 파드득대는 까치 한 쌍만이 위태로운 상황을 보여줄 뿐 언덕 아래 암수 꿩 한 쌍은 먹이를 찾는 듯 한가로워 보이고 주변에 우거진 잡초와 국화, 불그스레한 열매는 깊어가는 가을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이 그림 역시 동식물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모양을 생생하고 부드러운 필치로 잘 담아냈습니다.

꽃과 새는 늘 우리 주변에서 꽃 피고 노래하며 살아왔습니다. 옛 사람들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문학과 예술창작의 소재로 삼곤 했습니다. 진흙 속에서도 향기를 풍기며 여린 줄기로 꼿꼿하게 서 있는 연꽃과 작은 몸으로 비바람이 불어도 한 자리를 지키며 물고기를 사냥하는 물총새는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 자주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조선시대 선비화가들이 여러 가지 꽃과 새 그림을 많이 남겼지만 그 중에서도 심사정은 신선한 구도로 그림 속 사물의 배치를 잘했고 동물의 움직임과 살아가는 모습을 실감나게 잘 포착하기로 유명하였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담담한 색을 사용하면서도 화면에 생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색을 부분부분 사용하여 생동감 있는 느낌을 줍니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붓을 놓지않고 평생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던 선비화가 심사정이 어쩌면 그런 자신의 마음을 그림에 담아 붉은 연꽃과 물총새로 표현한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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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이 창작한 저작권 보호분야 홍련(紅蓮) - 선비들이 사랑한 꽃 저작물은 "공공누리" 출처표시-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3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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