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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군사지도 : 장상훈

<청구관해방총도(靑丘關海防摠圖)>(보물 제1582호)는 국방을 위해 곳곳에 설치한 군사기지의 위치를 상세히 기록한 지도입니다. 화면의 크기가 세로 86.3cm, 가로 285.0cm이어서 큰 지도에 속하며, 족자를 포함하면 세로 89.0cm, 가로 370.0cm나 됩니다. ‘청구’는 한국을 부르는 별칭 중 하나이고, ‘관해방(關海防)’이라는 말은 관방과 해방을 합쳐 말한 것입니다. 관방은 변경에 설치한 요새를 뜻하고 해방은 해안 지역에 설치한 요새를 뜻하는데, 중국과 일본 등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 기지들입니다. 따라서 이 지도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만주와 일본도 그려 넣었습니다. 다만 일본지도는 잇키 섬(壹岐島)부터 쿄토(京都, 지도에는 ‘國都국도’로 표기)까지의 대체적인 노정(路程)을 기록한 것일 뿐 실제 지형을 충실히 반영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한반도와 함께 산해관(山海關) 동쪽의 만주 일대를 모두 포함하려다 보니 요동지역 일대의 윤곽은 왜곡되었고 방위도 부정확한 편입니다.

 <청구관해방총도>, 조선 18세기, 285.0×86.3cm(그림), 370.0×89.0cm(족자 포함), 보물 제1582호, 본관11651

<청구관해방총도> , 조선 18세기, 285.0×86.3cm(그림), 370.0×89.0cm(족자 포함), 보물 제1582호, 본관11651

이 지도는 북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고 남쪽을 지도의 하단에 배치하는 일반적인 지도와 달리 동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고, 서쪽을 지도의 하단에 배치하였습니다. 소가 누운 모양으로 한국의 국토를 배치하여, 이른바 와우형(臥牛形)으로 불리는 구도입니다. 일반적인 구도에 익숙한 열람자들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지도의 상단 중앙부에 ‘東’, 하단 중앙부에 ‘西’, 지도의 우측 말단에 ‘南’이라는 방위 표시를 기재해 두었습니다. 동서의 길이에 비해 남북의 길이가 긴 국토를 대형의 지도로 제작하여 벽에 걸어놓을 경우 북부지방과 남부지방을 열람하기 어렵게 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된 형식으로 추정됩니다. 대개 북쪽을 지도의 상단에 배치하는 오늘날의 지도와 달리 시점의 다양성을 보여줍니다.

아직 충분히 많은 사례가 검토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군사기지를 강조하여 기록한 군사지도에 이러한 구도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구도의 지도는 대개 동서는 축소되고 남북은 실제보다 길게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지도 또한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지형을 상당히 많이 왜곡했지만, 전체적인 산줄기와 물줄기를 비롯하여 개별 고을의 상대적인 위치와 거리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국의 개별 관방 및 해방 시설을 한눈에 파악하게 한다는 제작 목적에 충실한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의 우측 여백에는 조선시대 한국의 관방과 해방에 대한 개요를 기재하였고, 함경도 덕원(德源)의 철관성(鐵關城)과 평안도 영변(寧邊)에 대해서도 비교적 긴 설명문을 실었습니다.

지도에 수록된 지명을 살펴보면 대체로 1776년에서 1787년 사이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즉 1776년에 개명된 평안도의 초산(楚山)과 충청도의 이산(尼山)이 표시되어 있어서 이 이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함경도에 장진(長津) 도호부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서 1787년 이전의 상황을 담고 있는 지도로 보입니다. 아울러 1795년에 시흥(始興)으로 개명되는 경기도 금천(衿川)이 기재되어 있고, 1800년에 이원(利原)으로 개명되는 함경도 이성(利城)이 기재되어 있어서 이와 같은 추정을 뒷받침합니다.

이 지도의 전체적인 표현 기법은 보물 제1538호로 지정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동국대지도東國大地圖> 와 대체로 유사합니다. 먼저 만주지역과 일본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데, 이는 18세기 중엽에 정상기(鄭尙驥, 1678~1752)가 완성한 대축척 전국지도에 나타나는 특성으로, <청구관해방총도> 가 이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세부 표현에서도 매우 많은 공통점이 확인되는데, 먼저 전국의 산줄기를 그림처럼 표현하고 산줄기의 중요도에 따라 차등을 둔 점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한국의 산줄기 가운데 중심이 되는 백두대간은 청록색 안료로 아름답게 표현하여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또한 각종 기호(記號)를 사용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정상기는 전국지도인 <동국지도(東國地圖)>에 전국의 여러 고을이 각각 어느 도에 속해 있는지를 표시했습니다. 즉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마련하여 그 속에 도별로 다른 색상을 채워 넣고 그 위에 개별 고을의 이름을 기재하였는데, 그 방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아울러 특정 고을의 중심지[읍치(邑治)]에 성(城)이 설치되어 있을 경우 지명이 기재된 사각형 테두리 주위로 성가퀴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산성(山城)의 경우에도 산봉우리 위에 성가퀴 모양을 그려 넣고 그 옆에 산성의 이름을 주기하였고, 관문(關門)에 있는 성[關城]에도 같은 방법을 썼습니다. 각 지역의 육군과 해군 사령부라고 할 수 있는 병영(兵營)과 수영(水營)은 그것이 어느 도에 위치하는지와 무관하게 원형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에 청색을 채워 넣은 뒤, 그 위에 ‘水營(수영)’, 또는 ‘兵營(병영)’을 기재했습니다. 각 도 감영의 경우도 정사각형 테두리 안에 일률적으로 붉은 색을 채워 넣고 그 위에 ‘海州監營(해주감영)’등으로 표현했습니다.

한편 군사기지인 진(鎭)과 보(堡)가 설치된 곳에는 청색 원을 그려 넣고 그 옆에 해당 진보의 이름을 주기하였으며, 교통시설인 역(驛)이 설치된 곳에는 황색 원을 그려 넣고 그 옆에 해당 역의 이름을 주기했습니다. 해안에는 방어 시설과 관련된 초(哨: 백 명을 단위로 하는 군대의 편제)와 당(塘)이 촘촘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봉수는 붉은 안료를 써서 횃불모양으로, 군사적 요충지도 붉은 안료를 써서 깃발모양으로 표현했습니다.

 <청구관해방총도> 충청도 태안반도 일대

<청구관해방총도> 충청도 태안반도 일대

이 지도에는 <동국대지도> 에 보이지 않는 독특한 표현 기법도 있는데, 서울의 표현에 있어서 더 큰 축척을 활용한 점입니다. 즉 정치적 중심지인 서울 지역에 대해서는 도성의 성곽과 성문, 주요 궁궐․사직․종묘의 위치 등 상세 정보를 수록해 둔 것입니다. 전국지도에서 서울 지역만을 특히 강조하여 그리는 방법은 이미 17세기 김수홍(金壽弘, 1601~1681)의 <조선팔도고금총람도(朝鮮八道古今摠覽圖)>에서도 확인됩니다.

<청구관해방총도> 서울 일대

<청구관해방총도> 서울 일대

이 지도에는 조선과 청나라와의 국경과 관련된 흥미로운 인식도 들어 있습니다. 백두산은 당시의 다른 지도와 같이 화려하게 강조되어 있으며 정상부에는 연못을 그리고 못의 둘레가 80리[澤周八十里]라는 설명도 붙여 두었습니다. 백두산 바로 옆에는 1712년 조선과 청의 경계를 정하고 세운 정계비(定界碑)를 그려 두었습니다. 천지에서 발원하는 한 물줄기에 ‘土門江源(토문강원)’이라는 주기를 붙였는데, 이 물줄기는 두만강의 북쪽을 흐르다 온성과 종성 사이의 두만강으로 흘러듭니다. 이 지점에 ‘풍계강은 분계강으로도 부르는데 토문강의 하류이다[豊界江一名分界江土門江下流]’라는 주기를 달아서, 두만강과 토문강을 서로 다른 강으로 보는 인식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과 국립중앙도서관이 각각 소장한 <서북피아양계일람지도(西北彼我兩界一覽之圖)> (보물 제1537호)에도 두 강이 표시되어 있는데, 두만강의 상류에 ‘土門江源’이라는 주기가 붙어 있고 그 북쪽을 흐르다 두만강으로 합류하는 강의 상류에는 ‘分界江源(분계강원)’이라는 주기가 붙어있어서 일정한 차이를 보입니다.

<청구관해방총도>백두산 일대와 두만강 유역

<청구관해방총도> 백두산 일대와 두만강 유역

한편 만주에서 조선으로 연결되는 두 갈래의 도로가 함경도 회령(會寧) 쪽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 각각 영고탑(寧古塔, 오늘날 중국 헤이룽장성의 닝안)과 오라(烏喇)로 연결됩니다. 회령에서 영고탑까지는 680리, 회령에서 오라까지는 887리라는 거리 정보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의주에서 봉황성(鳳凰城), 요양(遼陽), 성경(盛京)을 거쳐 산해관에 이르는 도로도 표시해서, 결국 청의 수도 북경으로 이어지는 노정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울타리도 그려 두었으며, 울타리에 있는 관문도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백두산 인근에 세운 조청 정계비를 그려둔 것처럼, 고려시대에 윤관(尹瓘, ?~1111) 장군이 여진을 물리치고 정계비를 세웠다는 선춘령(先春岺)이 함경도 경원(慶源)에서 600리 지점에 있다는 기술도 싣고 있습니다. 울릉도 동쪽에는 우산도를, 두만강 하구에는 녹둔도를 그려 둔 것도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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