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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장식 구멍단지 : 박진일

아래위를 눌러 납작해진 공 모양의 몸통에 좁은 목과 넓게 되바라진 아가리를 가진 구멍단지입니다. 몸통 한 가운데에 하나의 구멍을 뚫었으며 몸통 상부와 목에는 파도 무늬를 베풀었습니다. 아가리의 안쪽과 몸체 윗부분에 녹색 자연유(自然釉)가 붙었는데 가마에서 떨어진 재가 마치 유약을 바른 것 같은 효과를 내었습니다. 목 바로 아래 어깨에는 두 마리의 사슴을 도드라지게 붙였는데 그 뒤로 다른 장식을 붙였던 흔적도 있습니다. 짧고 통통한 몸통에 짧은 다리 네 개와 작은 머리를 붙였습니다. 머리에는 아주 큰 뿔을 달았는데 앞에서 보았을 때 왼쪽 사슴의 뿔은 온전하나 오른쪽 사슴의 뿔은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두 눈은 둥글게 찍어서 표현하였으며 입을 살짝 벌린 왼쪽 사슴과 달리 오른쪽 사슴은 입을 완전히 벌린 모습입니다.

사슴 장식 구멍단지, 가야 5세기, 높이 16.1cm, 덕수2440 사슴 장식 구멍단지, 가야 5세기, 높이 16.1cm, 덕수2440

언제, 어디서 만든 구멍단지인가?

이 단지는 1910년도에 구입한 것인데 아쉽게도 출토된 곳을 알 수 없습니다. 구멍단지는 일본 고훈(古墳)시대에 많이 보이는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남해안 지방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경남 서부의 소가야 권역이나 전남 해안의 백제 권역에서입니다. 사슴을 장식한 이 단지는 몸통, 목과 아가리의 모양으로 미루어 보아 5세기 대 소가야 권역 무덤에서 출토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에서는 구멍에 죽관(竹管)을 꽂은 채 발견된 것도 있어 구멍은 술과 같은 액체를 붓기 위한 것이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왜 사슴인가?

그렇다면 소가야 사람들은 왜 구멍단지에 사슴을 장식했을까요? 사슴은 소가야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요?
사슴은 포유류 중 발굽이 있는 동물인 유제류(有蹄類)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발굽이 짝수인 우제류(偶蹄類)입니다. 세계적으로 150종이 넘으며 남극과 호주를 제외한 전 세계에 분포합니다. 신화나 전설 속의 주인공으로 종종 등장하는 사슴은 인류의 중요한 식량 자원 중 하나인데 선사시대 여러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북 제천 점말동굴에서 사슴 머리뼈가 발굴되어 구석기시대부터 사슴 사냥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슴 머리뼈, 제천 점말동굴, 구석기시대, 길이 40.8cm, 연세대학교박물관 사슴 머리뼈, 제천 점말동굴, 구석기시대, 길이 40.8cm, 연세대학교박물관

신석기시대가 되면 사슴 뼈는 외해(外海)의 섬을 제외한 많은 유적에서 발견됩니다. 부산 동삼동 유적에서는 발뼈[足骨], 자뼈[尺骨], 뿔[角] 등 다양한 사슴 뼈가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다른 지역에서 포획하여 해체한 사슴의 여러 부위 가운데 이용률이 높은 부위만 반입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사슴의 뼈는 다루기 쉬운 편이라 뿔로 칼자루나 괭이를 만들고, 다리뼈는 갈아 화살촉이나 작살 같은 사냥 도구를 만듭니다. 어깨뼈[肩胛骨]는 불로 지져 점을 치기도 합니다. 또 사슴의 긴 뿔은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인식하기도 합니다. 특히 흰 사슴은 아주 신성한 존재인 신의 사슴[神鹿]으로 여기며 국가 제사에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도교에서 신선이 타고 다니는 동물 중 하나가 바로 사슴입니다. 우리나라 고대 문헌에서도 사슴과 관련된 기록이 많은데 『삼국사기』에 25차례나 등장합니다.

“48년 가을 7월, 서부 사람 회회가 흰 사슴을 잡아 바쳤다. 왕은 상서로운 일이라 하여 곡식 일백 석을 주었다”
秋七月 西部人茴會獲得白鹿 獻之 王以爲瑞 賜穀一百石
『삼국사기』권24, 백제본기, 초고왕48년

또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도 사슴이 자주 등장합니다. 부여 금와왕의 아들과 사슴 사냥을 한다든지, 비류국을 합병할 때 흰 사슴을 제물로 삼아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하는 등 천손(天孫)의 상징과 왕권의 정당성을 나타낼 때 사슴이 등장합니다.

이런 신성함의 상징으로 인해 제의(祭儀)의 희생물로 사슴을 종종 이용했습니다. 특히 삼국시대 무덤에서 사슴 뼈가 확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야의 소국인 다라국이 있었던 경남 합천의 옥전 유적 M3호 무덤의 부곽(副槨)에서는 여러 점의 사슴뿔이 발견되었습니다. 창녕 송현리 15호 무덤의 사람 발가락뼈 사이에서도, 경주 왕경(王京) 지역의 우물에서도 사슴 뼈가 출토되었습니다. 이처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를 통틀어 사슴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동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사슴을 그리다

이런 중요한 사슴을 사람들은 잡고 싶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그 희망을 예술 작품 속에 남겼습니다. 신석기시대의 부산 동삼동 조개무지에서 출토된 토기조각에는 사슴그림이 선명합니다.

사슴 무늬 토기조각, 부산 동삼동, 신석기시대, 길이 8.7cm, 복천박물관 (『시간을 비우는 존재, 사슴』, 국립김해박물관, 2015, 49쪽 사진)

사슴 무늬 토기조각, 부산 동삼동, 신석기시대, 길이 8.7cm, 복천박물관
(『시간을 비우는 존재, 사슴』, 국립김해박물관, 2015, 49쪽 사진)

잘 알려진 국보 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는 당시 주요한 식량 자원인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237점으로 추정되는 그림 가운데 사슴 그림은 36점으로 약 15%를 차지합니다. 국보 제147호인 인근의 천천리 암각화에서도 수컷과 암컷이 마주보는 사슴 그림이 있습니다. 이것은 번식기의 암수를 표현한 것으로 풍요와 번성을 상징합니다.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암각화에서 사슴이 많이 보이는 것은 사슴 사냥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 아산 남성리 초기철기시대 무덤에서 출토된 검파형동기(劍把刑銅器)에는 뿔이 없고 짧은 꼬리를 가진 사슴이 그려져 있습니다. 같은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인 견갑형동기(肩胛形銅器)에도 뿔이 있는 사슴 두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한 점은 창을 맞은 모습입니다.

검파형동기,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cm, 신수3941

검파형동기, 아산 남성리 유적, 초기철기시대, 길이 25cm, 신수3941

삼국시대가 되면 신라와 가야를 중심으로 사슴을 선으로 그린 토기가 많이 보입니다. 울산 삼광리에서 출토된 긴목 항아리에는 말과 사슴을 그렸으며, 밀양 제대리 44호 돌방무덤의 뚜껑에는 걸어가는 암수 한 쌍의 사슴을 역시 선묘(線描)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사슴이 많이 등장합니다. 무용총, 수렵총과 덕흥리 고분 등의 ‘수렵도’에서 고구려인의 사슴 사냥을 볼 수 있습니다.

사슴을 본 떠 만들다

사슴 장식 뿔잔, 가야 5~6세기, 높이 24.4cm, 신수6700

사슴 장식 뿔잔, 가야 5~6세기, 높이 24.4cm, 신수6700

인물이나 동물 및 특정한 물건을 본떠 만든 토기를 상형토기(象形土器)라고 합니다. 사슴 역시 상형토기의 주제로 많이 이용되었습니다. 주로 5~6세기 가야나 신라무덤에서 사슴을 형상화한 토기가 출토됩니다. 경주 황남동에서는 작은 사슴토우가 출토되었으며 가야토기로 추정되는 사슴 장식 뿔잔도 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슴을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겼던 마음이 삼국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소가야에서 만든 이 사슴 장식 구멍단지도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던 사슴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것입니다. 소가야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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