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년 전후
국립중앙박물관 유물카드의 기록에 따르면 1934년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위치한 세조世祖 태봉胎封을 옮길 때 출토되었다고 한다. 당시 정통正統 3년(1438)명 태지胎誌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하므로, 대체로 1438년경을 전후한 인화 분청사기의 제작 경향을 보여주는 대접이라 할 수 있다. 안팎 측면에 작은 국화무늬 도장으로 촘촘히 시문하고, 그 사이에 커다란 국화 4개가 배치되었다. 그릇 안쪽 바닥 면에는 커다란 원 안에「장흥고長興庫」의 관청 이름이 상감되었다. 전체적인 무늬의 구성이 인화무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관청 이름을 새긴 방법과 국화무늬 등 고려 상감 청자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