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부인 강씨康氏 및 자신의 지지자 1만여 명과 함께 발원하여 봉안한 사리구로 1932년 금강산 월출봉 석함 속에서 발견되었다. 원元의 영향을 받은 라마탑 모양의 작은 사리 그릇에 부처의 사리를 넣어 모신 뒤, 이를 다시 집 모양의 그릇에 넣고 청동그릇, 백자그릇의 순으로 포개어 봉안했다. 백자 그릇 바깥쪽에는 ‘삼회三會(미륵보살이 내려와 세 차례 설법하면서 중생을 구제함)의 때가 멀지 않았다’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왕조의 개창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려 후기에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 원나라와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원에서 유행된 라마 불교가 불상과 사리기 등 고려 불교 미술품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