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와 새로운 모색 80여년에 걸친 원나라의 간섭 아래에서 고려인들은 막대한 공물과 공녀를 바치는 등 엄청난 고통을 입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려인들은 성리학과 화약 제조 기술, 목면 등을 원나라에서 도입하여 문화와 과학 기술 발전에 큰 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는 오래된 현존 금속활자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우왕 3년, 1377)이 말해주듯이 금속활자 인쇄의 맥도 이어지고 있었다.
14세기 중반에 공민왕은 원나라의 쇠퇴를 틈타 반원 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토지 개혁 등에도 적극 나섰으나 지지 세력의 부재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공민왕의 성리학 중시 정책으로 성장한 정도전 등 일부 급진파 신진 세력은 위화도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와 손잡고 대대적인 토지제도 개혁을 단행함으로써(공양왕 3년, 1391) 새 왕조 개창의 명분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